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정부·지자체·국민이 모두 있는 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을 통해 이번과 같은 전염병 유행 상황에서 정부와 지자체, 국민이 해야 할 일을 상세하게 정해 놨다. 하지만 이 법의 중요 조항을 정부도 제대로 몰라 우왕좌왕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법률 및 방역 전문가들은 "법대로만 했어도 초기에 사태를 잡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정부·지자체가 할 일, 법에 다 나와 있다

이 법은 1954년 제정돼 2009년까지 '전염병 예방법'이라는 이름으로 통용되다 신종플루가 대유행한 직후인 2010년 대폭 개정되며 지금 이름으로 바뀌었다.

총 12장 82조(條)에 걸친 내용 중 16조(감염병 표본 감시 등)를 보면 정부는 메르스 환자를 빨리 가려낼 수 있도록 지자체의 보건환경연구원에도 환자의 메르스 감염 여부를 조사해 확진(確診)할 권한을 주고, 지자체가 그 결과를 통보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발병 후 15일이 지나도록 이 법에 따른 조치를 하지 않았고, 이는 6일 "보건환경연구원에 확진 권한을 부여해달라"는 박원순 서울 시장의 공개적 요청으로 이어졌다.

특히 서울시 측이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병원과 모든 메르스 환자의 동선 및 접촉자에 대한 정보를 달라"고 요구한 것은 지난 2010년 법 개정을 통해 국민의 알 권리를 명시한 이 법 6조는 물론, 방역 대책을 시도 지사와 공유케 한 35조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란 지적이 나온다. 연세대 보건대학원 김소윤 교수는 "이를 '위법'이라고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 입법 취지를 생각하면) 논란이 있을 수 있다"면서 "나중에 이 법을 보완하게 될 때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자체도 비판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이 법 4조와 18조는 국가뿐만 아니라 지자체도 지체 없이 전염병 방역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의무를 정해놓고 있다. 또 36조는 지자체장이 전염병을 전담해 격리 치료할 병원을 지정하도록 하고 있으며, 47조는 지자체장이 전염병 전파를 막기 위해 환자를 격리하고 전염병이 퍼진 장소를 폐쇄할 수 있는 권한까지 줬다.

국회 법사위원장을 지낸 조순형 전 의원은 "이렇게 지자체가 해야 할 당연한 권한과 의무가 있는데도 서울시 등은 이를 제대로 행하지 않고 있다가 뒤늦게 기자회견을 열고 '협력을 해달라, 권한을 달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법대로만 잘했어도 이런 상황 안 왔을 것"

이 법은 중앙정부와 지자체뿐만 아니라 국민의 의무도 정해 놓고 있다. 6조와 18조는 국민이 정부의 역학조사나 격리, 입원 치료 등 조치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도록 하고 만약 이를 어길 경우 2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또 11조와 12조는 의사와 한의사 등 의료인은 물론, 일반 국민도 전염병 환자를 발견하면 정부 기관(보건소)에 반드시 알리게 했다.

하지만 지난 20일간 일부 국민의 대응 태도는 정부나 지자체의 태도와 다를 것이 없었다. 첫 환자(1호 환자)를 비롯한 몇몇 환자는 자신의 행적과 방문한 병원에 대해 거짓말을 해 메르스 초기 대응을 어렵게 만들었다. 또 지난 2일엔 정부의 자가 격리 조치 지시를 받은 50대 여성이 이를 무시하고 골프 나들이를 갔고, 6일엔 또 다른 50대 여성이 울릉도까지 갔다가 격리 조치를 당했다.

메르스 초기 환자들을 진료했던 일부 병원 의료진도 메르스 의심 보고를 좀 더 빨리하지 못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법률사무소 해울의 신현호 대표 변호사는 "지금 있는 법대로만 제대로 했어도 사태 초기에 일선 의료진부터 보건 당국, 지자체, 중앙정부의 유기적 협조가 이뤄지면서 이런 상황을 맞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조순형 전 의원은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에 대비해 만든 법이 있는데 (제대로 지켜지지 못해) 안타깝다"면서 "법을 중심으로 정부와 국민이 합심해 메르스라는 국난(國難)을 이겨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