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

사막이 아닌 한국에서 낙타를 보려면 동물원에 가야 한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 사육사의 눈을 피해야 비로소 가능한 일을 정부가 하지 말라고 했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의 예방책으로 내놓은 일명 '낙타 접촉 금지령'이 그것이다. '발효되지 않은 낙타유'와 '익히지 않은 낙타 고기'를 먹지 말라는 건 차라리 블랙 유머에 가깝다. 발 빠른 네티즌들은 "휴~ 정부 조치가 아니었으면 낙타유를 먹을 뻔했지 뭐야" "출근할 때 당분간 낙타는 타지 말아야겠다"라며 한동안 와글거렸지만 그것만 해도 며칠 전 상황이다. 메르스 전파가 수그러들 줄 모르는 지금 네티즌들은 '메르스 지도'를 만들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팔꿈치로 누르는 깨알 같은 지식과 정보를 나누며 바이러스 공포와 맞서고 있다.

'낙타 접촉 금지령'을 해부해보면 정부와 정치권에 만연한 암(癌) 덩어리가 보인다. 당면한 어려움을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는 '문제 해결 프레임'의 실종이 그것이다. 대신 국민을 어린애처럼 취급해 정보를 통제하고, 훈계의 대상으로 삼아 이래라 저래라 하는 '지시 프레임'이 그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 '한국엔 낙타가 살지 않는다'는 현실 인식 부재는 그다음 문제다.

다시 낙타로 돌아가자. 그렇게 낙타와의 접촉이 우려되는 상황이었다면 5000만 국민을 대상으로 접촉 기피령을 내릴 것이 아니라 한줌밖에 안 되는 한국 내 낙타들을 영구 격리시키면 된다. 문제의 지침을 낸 보건복지부는 중동 지역 여행자들을 위한 것이 확대 유포된 것이라고 해명하지만 중동으로 출국하는 사람의 숫자는 여전히 소수다. 나가는 사람에게 낙타 접촉 금지를 권고하기 이전에 중동에서 입국하는 사람들부터 철저하게 관리했어야 했다. 1호 메르스 감염자도 중동 지역에서 귀국한 후 7일 만에 발병한 사람이었다.

한 인간이 성숙하고, 기업이 성공하는 데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의 부산물이자 결과라는 점이다. 영국의 철학자 칼 포퍼(Karl Popper)는 "모든 인생은 문제 해결(All life is problem solving)"이라고 했다. 리더란 문제 해결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을 말한다. 자연히 최고의 지도자는 최고의 문제 해결사다.

모든 문제는 껍데기만 다를 뿐 그 안에 공통적인 속성이 있다. 소통의 부재, 자원 분배의 불균형, 상호 신뢰의 부재, 일부의 욕심과 독주, 일부의 나태와 무사안일, 흐릿한 비전, 목표의 상실…. 유능한 지도자는 그 속성에 주목해서 마치 고장 난 시계 고치듯 문제를 풀어헤친다. 각 부품의 역할과 톱니의 작동 원리를 파악한 후 느슨한 나사는 조이고 부서진 나사는 교체해 시계가 다시 작동하도록 고쳐놓는다.

문제 해결에는 기술 못지않게 태도도 중요하다. 문제에 함몰되어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모하고 비판을 일삼는 자세로는 절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오히려 문제를 도전의 기회로 여기고 멋지게 해결하겠다는 선도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이와 함께 문제 해결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제시하는 해법이 투명한 소통이다. 문제를 풀려면 우선 정보를 모아야 하고, 문제 의식을 공유해 모두의 협력을 이끌어내야 하므로 소통이 필수다.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도 당연히 병원 이름과 감염 경로 등을 공개했어야 한다. 그리고 협조를 구했어야 한다. 정보를 틀어쥐면 괴담만 양산될 뿐이다. 국민을 무지의 늪에 방치하고 잠재적 문제아 취급할수록 국민은 더욱 정부를 불신하고 각자 제 살길을 찾으려 할 것이다.

문제 해결에는 걸림돌이 적지 않다. 문제를 틈타 정치적 입지를 세우려는 사람, 숨은 의제를 관철시키려는 사람, 자기가 속한 조직의 이익만을 앞세우는 사람이 그들이다. 유능한 지도자는 그런 이들이 이끄는 닫힌 행정을 열린 마음으로, 보신주의(保身主義)를 창의적 사고로 전환시킬 줄 안다.

미숙하고 우왕좌왕하는 정부와 당국, 그 틈에 눈치 보듯 정쟁(政爭)을 잠시 중지한 것 이외에는 어떤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하는 정치권을 바라보는 국민은 오늘도 조용히 인터넷을 켜고 집단 지성을 동원해 문제 해결책을 구한다. 간혹 괴담이라는 암초에 부딪치겠지만 인터넷 바다를 항해해야 하는 사람들은 그조차 숙명이라고 받아들일 것이다. 정부가 메르스보다 더 두려워 해야 하는 것은 그렇게 마음을 접고 떠나가는 국민의 뒷모습이다.

오랫동안 우리는 '억압하지 않는 정부'를 꿈꾸어왔고, 그 꿈은 어느 정도 이루어진 것 같다. 이제는 '문제 해결 능력이 있는 정부'를 갖고 싶다. 유독 '골든타임'을 자주 외친 지금의 정부에 과연 고장 난 아날로그 시계 하나라도 고칠 능력이 있는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