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세 아이를 둔 주부 김모(38)씨는 지난 4일로 예정됐던 아이의 대학병원 진료를 취소했다. 김씨는 "아이가 피부병 치료를 받으러 대학병원에 다니는데 진료를 미뤘다"면서 "원래 환자가 많아 어렵게 예약을 잡았었는데 병원에 갔다가 오히려 메르스에 걸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예약을 취소했다"고 했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감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4명 발생하고 확진 환자가 40명을 넘어서면서 '엄마'들 사이에 경계령이 내려졌다. 메르스 사태가 국가적 사태로 비화하고 있는 가운데 특히 30~40대 주부들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실제 5일 오후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여성들이 많이 본 뉴스' 집계에선 메르스 관련 소식이 1위부터 10위까지 차지했다. 남성들이 많이 본 뉴스 상위 10위 가운데 메르스 관련 소식은 3~4건에 불과했다. 메르스 사태 이후 한 포털사이트의 여성 접속자도 20~30% 늘었는데, 포털사이트 관계자는 "여성들의 메르스 사태에 대한 관심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주부들이 주로 활동하는 회원 수 270만여명의 한 생활 정보 카페엔 메르스 관련 게시물이 이날 오후 4시까지 490여개 올라왔다. '병원 방문을 피하라' '당분간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지 마라' 같은 메르스 대처법이 대부분이었다.

한 포털사이트에 개설된 육아 정보 카페엔 'XX 병원에 가도 되느냐'는 문의 글과 함께 메르스 확진 환자가 발생한 병원 리스트가 수시로 게시됐다. 약을 마음대로 먹을 수 없는 임신부들도 병원에 가야 할지를 묻는 글을 올렸다. 임신 3개월째에 접어든 전모(29)씨는 "임신부는 정기적으로 병원에 다녀야 하는데, 만에 하나 메르스에 걸리면 약도 못 먹고 잘못될까 봐 불안하다"고 했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야 하는지를 놓고도 엄마들 사이에서 정보전이 벌어지고 있다. 한 육아 정보 카페에 올라온 '요즘 같을 때에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도 되느냐'는 글엔 '정부 통제가 안 되는 판에 내 새끼는 내가 지켜야 한다' '맞벌이라도 이럴 땐 엄마가 며칠 쉬면서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글들이 올라왔다.

주부 최모(39)씨는 카페에 올린 글에서 "동네 유치원에 중동에 다녀온 아이가 있어 휴원한다는 소식을 듣고 더 불안해졌다"면서 "일단 동네 엄마들과 정보를 주고받으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지만, 사태가 악화하면 캐나다에 사는 동생네 집으로 피난을 갈 것"이라고 했다.

교육 당국을 향한 엄마들의 청원도 빗발치고 있다. 메르스 환자가 집중적으로 발생한 경기도의 교육청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엔 지난 1일부터 "휴교령을 내려달라"는 엄마들의 글이 300여개 올라왔다. 5일 메르스 확진 환자가 발생한 수원에 사는 주부 김모(40)씨는 "다음 주 월요일부터는 휴교령이 내려지지 않더라도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겠다"고 했다.

엄마들이 메르스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데 대해 전문가들은 '모성(母性) 본능'을 이유로 꼽았다. 서강대 사회학과 전상진 교수는 "자녀 등 가족의 안전에 관련된 문제라서 어린 연령대의 자녀를 둔 30~40대 여성들은 관련 정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대 사회학과 신광영 교수는 "가족 구성원의 안전을 돌보는 것은 어머니의 역할로 주로 인식돼 온 전통적 관념이 메르스 사태에서 여실히 나타난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