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해범 동북아시아연구소장

중국 국무원이 지난달 8일 발표한 '제조업 2025' 문건을 인쇄했더니 A4 용지로 30쪽에 달했다. 향후 10년간 제조업 강국이 되기 위한 전략을 담은 이 문건은 도입부에서 제조업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했다. '제조업은 국민경제의 주체로서 입국(立國)의 기본이며, 흥국(興國)의 도구이며, 강국(强國)의 기초다. 세계 강국의 흥망성쇠와 중화민족의 분투 역사가 증명하듯이 강대한 제조업 없이는 국가와 민족의 강성함도 없다.' 이어 문건은 자신들의 강점과 약점도 지적했다. '30여년 노력으로 우리는 제조업 1위국이 되었다. 유인(有人) 우주선, 수퍼컴퓨터, 고속철도, 석유 탐사 설비 등에서 '기술 돌파'를 이룩했다. 하지만 우리 제조업은 여전히 덩치만 컸지 강하지 못하고, 창의력이 미약하며, 핵심 기술의 대외 의존도가 높다.' 국무원은 이 문서를 '제조업 강국 실현을 위한 첫 번째 10년(2015~2025년) 행동강령'이라 정의하고, 각 성(省)에 '철저한 집행'을 지시했다.

중국 정부의 문건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주장의 바탕에 역사와 철학이 담겨 있고 논리가 정연해 설득력이 강하다는 점이다. 공산당대회나 전인대(全人大)에서 채택되는 문건은 많은 학자와 전문가들이 장기간 검토하고 최고 지도부가 승인하는 과정을 거친다. 거기에는 아편전쟁에서 시작된 굴욕의 역사에 대한 자성(自省)과 민족 부흥을 향한 강한 의지, 미래 사회의 청사진, 당면 문제 해결을 위한 실천 방안이 담겨 있다. 이를 정독한 중국인이라면 누구나 피가 끓고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느끼게 되는 웅변 같은 글이다. 이런 문건이 8300만 공산당원을 통해 말단까지 전파되고, 다시 각 단위별로 문제의식을 공유해 행동으로 옮긴다는 점이 중국의 발전 원동력이다.

2013년 에이펙(APEC)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이 제창한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과 해상 신실크로드)'도 14억 중국인의 지지를 얻는 데 성공했다. 중국이 공산당 일당 독재국가라고 하지만 국민 지지 없이는 최고 지도자의 뜻을 펼치기가 쉽지 않다. 1950년대 말 마오쩌둥은 10년 만에 미국을 따라잡는다는 '대약진 운동'을 벌였으나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으로 국민 지지를 잃고 경제는 파탄 났다. '일대일로'는 다르다. 중국 언론뿐 아니라 최근 만나본 중국 관료나 학자, 유학생도 '일대일로'를 얘기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의 얼굴엔 국가 정책에 대한 공감과 지도자에 대한 자부심이 흘러넘쳤다.

무엇이 중국인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시 주석을 대표로 하여 그 뒤에 숨은 많은 연구자와 전문가, 참모들이 고민하며 만들어낸 국가 비전이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 꿈과 희망으로 부풀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 공감은 자신들이 왜 노력해야 하는지에 대한 역사적 인식, 현실 문제에 대한 깊은 이해, 꿈을 실현할 타당한 전략에서 나온다. 중국인들은 "일대일로를 통해 세계를 운명 공동체로 만들 것"이라며 "이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위한 100년 프로젝트"라고 했다.

이런 중국을 보면서 부러워지는 것은 내 가슴을 뛰게 하는 꿈과 전략을 들어본 지 너무나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어디에서 미래의 꿈과 전략을 찾을 수 있는가. 우리도 더러운 욕심과 악다구니가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한 꿈과 전략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