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기 전에 선배가 조언했다. '너무 많은 걸 희생할 필요 없다.' 선배는 일하는 엄마가 일터에서는 집 때문에, 가정에서는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모습을 자주 봐왔다고 말했다. 그러니 큰 욕심 내지 말고 마음을 편히 하라는 게 선배의 작은 충고였다. 그렇지만 내 속이 좁아서일까? 아이를 낳고 보니 맘처럼 되지 않았다. 아이가 이상한 행동이라도 보이면 이게 다 일하는 엄마 탓은 아닌지 자책했다. 주변에 말하기도 쉽지 않았다. 나 혼자만 더 힘든 티를 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혼자서 가슴앓이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육아서에 더 매달리게 됐던 것 같다.

수많은 육아서 가운데 내 눈길을 잡은 책이 한 권 있다. '아이를 잘 키운다는 것'.

평생을 소아정신과 의사로 살아온 노경선 박사의 육아지침서다. 이 책은 '갓난아기나 다름없는 12개월까지는 무조건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해주고 그 이후에는 아이에게 최선의 방법을 선택하되 아이와 의논해서 처리해야 한다'고 밝혀놓고 있다.

현실은 쉽지 않다. 의논은 고사하고 간단한 질문에 답을 해주기도 힘들 때가 많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가 물었다. "공부는 왜 해야 하는 거야?" "언젠가는 너도 독립을 해야 하니 네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야 하니까." 횡설수설, 답을 했다. 나는 초등학교 때 그런 질문을 한 기억이 없다. 어린 시절, 운동장이나 골목에서 놀다가 엄마가 밥 먹으라고 부르면 집으로 들어가곤 했다. 다른 아이들도 다 그랬다. 그러니 공부는 왜 해야 하는지, 굳이 물어볼 일이 없었다. 요즘은 다르다. 학원에도 가야 하고 교재도 봐야 하고, 아이도 어렵고, 부모도 힘들다.

황정민 아나운서·KBS 'FM대행진' 진행

자꾸 머리가 아프다 해서 병원에 가봤더니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 같다는 진단이 나왔다. 엄마는 아이를 위해 머나먼 교육 1번지로 가야 하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는데 시작도 하지 않은 이 마당에 아이는 더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능력 있고 성격 좋은 사람이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성공하기 위해 많은 걸 억누르고 분노로 가득 찬 사람과 성공하지는 못했어도 가족을 사랑하고 주변 사람들과 행복하게 잘 지내는 사람 가운데 누구를 더 원하는가 스스로 물어볼 것을 권하고 있다.

먼저,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다. 다가오는 여름방학에는 무엇을 하고 놀 것인지 아이와 진지하게 논의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