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처음 비행기를 타던 순간을 기억한다. 커다란 고체 덩어리가 하늘을 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기막힌 일일 것이다. 이 고체 덩어리를 직접 조종해 하늘을 날게 하는 사람이 있다. 적게는 100명, 많게는 500명이 넘는 사람들의 하늘길을 책임지는 캡틴, 항공기 조종사다.

항공기 조종사는 여객 및 화물을 목적지까지 운송하기 위하여 항공기를 조종하는 사람을 말한다. 항공기 조종사의 일과시간은 법적으로 정해져 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적정시간 동안 운항해야 최선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활동 중인 조종사의 근로시간은 1년에 1000시간 미만의 비행, 1개월 단위로 환산하면 한 달에 80시간 미만을 비행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인천공항으로 출근한다고 가정했을 때 비행 일정에 따라 비행시간 1시간 45분 전까지 출근한다. 출근 후 항로, 목적지, 승객 수, 연료량, 기상 조건 등이 적힌 비행관계 서류를 받아 검토한 후 운항 시 주의사항, 사전에 확인해야 할 항목을 점검한다. 1시간 20분 전, 객실승무원과 합동 브리핑을 한다. 브리핑 중에는 오늘의 비행시간과 항로의 기상 상황, 승객을 접대할 때 알아야 할 사항 등을 충분한 대화를 통해 준비한다. 출발시각 50분 전에는 항공기에 도착해 각종 비행 자료를 컴퓨터에 입력한다. 이륙 허가를 받기 위해 목적지, 항로 및 소속 항공사 등을 관제탑에 보고하고 활주로에 진입해 이륙한다. 이륙 후에도 관제탑에 보고한다.

기상도 및 기상 레이더를 비교 확인하고 고도계 등을 점검하며 자동조종장치를 조정한다. 착륙안내방송 및 승무원에게 착륙 준비를 지시한다. 착륙공항의 기상 상태, 접근 절차, 비행장 시설, 주기장 활주 경로 등을 브리핑한 후 착륙허가를 받고 착륙한다. 항공기 비행시간, 비행구간별 연료소모량, 항로, 풍속 등을 운항일지에 기록한다. 비행 중에 발생한 각종 설비 고장 및 이상 현상에 대해 보고한다. 비행시간이 끝나면 30분 후부터 휴식시간을 가지고 호텔 도착부터 다음 날 호텔을 떠날 때까지의 시간을 휴식시간으로 계산한다.

조종사는 일반 회사와 달리 직급 체계가 단순하다. 항공기에 대해 최종 책임을 갖는 사람을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기장(captain)이라고 일컫는다. 기장이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경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기장과 함께 비행기 운항을 하는 사람을 부기장(first officer)이라고 한다. 부기장은 기장을 도와 항공기 시스템을 운용한다. 직급상 기장과 부기장으로 구분하지만, 실제 비행에서는 PF(Pilot Flying)와 PM(Pilot Monitoring)으로 나뉜다. PF는 항공기를 조작하여 운항하는 사람이고, PM은 PF의 조종을 모니터링하며 관제사(ATC: Air Traffic Controller)와의 교신을 책임지는 사람이다. 비행 중에는 기장과 부기장이 유기적으로 바꿔가며 휠(wheel)을 잡는다. 운항 중에는 오해의 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해 큰소리로 명확하게 복명복창 절차(standard callout)를 실시해야 하는데, 이때 조종간을 이양하며 하는 말이 영화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I have control’ ‘You have control’이다.

항공기 조종사가 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먼저 공군사관학교에 진학하는 것이다. 조종사를 양성하는 국내 전문기관 중 하나인 공군사관학교에서 4년간 생도생활을 마친 후, 15년 이상 군 복무를 한다. 그 후 경력이 인정되어 민간항공사에 취직하는 방법이다. 두 번째는 국가에서 인정하는 기관인 ‘한국항공대학교’나 ‘한서대학교 운항학과’에 입학한 후 비행훈련을 받고 취업하는 것이다. 보통 학군단(ROTC)에 지원하여 학군단 생활을 하며 비행 기초 훈련을 받지만, 학군단이 아닌 비행교육원(APP)에 지원하는 경로도 있다. 항공관련 학교가 아닌 일반대학에 진학하여 공군조종장학생 또는 공군조종사관후보생에 지원해 항공기 조종사 꿈을 키울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는 미국이나 호주 등 외국에 있는 플라잉스쿨에 입학해 훈련을 받은 후 경력을 쌓아 한국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요즘에는 항공사별로 조종훈련생을 따로 뽑아 교육한 후 입사시키는 경우도 있다. 조종사가 되기 위해서는 항공법 규정에 따라 국토해양부 장관이 발행한 조종사 자격증과 한정증명 등을 꼭 받아야 하며, 항공 전문 지식, 외국어 능력, 신체 조건이 필수적이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 따르면 앞으로 10년간 국제 항공 여객 시장은 매년 5%씩 성장할 전망이다. 향후 20년간 전 세계적으로 53만3000명에 달하는 조종사 일자리가 쏟아질 것으로 항공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국내 항공기 조종사 인구는 5300명으로 5년 전보다 40% 이상 늘었다. 하늘을 난다는 것만으로 동경의 대상인 항공기 조종사는 2014년 한국고용정보원의 자료에 따르면, 전망 좋은 직업 2위에 올랐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살았다. 동네를 돌아다닐 때면 육군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러다 생전 처음 보는 멋진 제복을 입은 군인을 봤는데 바로 공군이었다. 호기심이 생겼다. 그로부터 5년 후 제주도에 있는 친척 집에 가기 위해 처음으로 비행기를 탔다. 날짜까지 생생하게 기억한다. 8월 15일.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날 탔던 밤 비행기였다. 세차게 내리는 비를 뚫고 비행기가 올라갔는데 보름 즈음이어서 크고 둥근 달이 높게 떠 있었다. 깜깜한 밤에 비가 쏟아지는데 달이 커다란 비구름을 강렬하게 비추는 모습이 가히 장관이었다.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보며 하늘을 동경하기 시작했고, 하늘을 날고 싶다고 생각했다.

조종사가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군인으로 14년 동안 비행기 조종을 했다. 대한항공의 경우 비행시간이 1000시간이 넘어야 입사할 수 있다. 다른 항공사 역시 일정 기준을 넘어야 한다. 공군사관학교에서도 전 생도가 비행기를 탈 수 있었던 것은 아니고, 30~40%만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이 중에서도 신체검사 및 다른 검사를 통해 20~30%는 탈락하고 남은 사람만 파일럿이 될 수 있었다. 힘든 순간이 수없이 많았다. 그때마다 나를 버티게 해주었던 것은 ‘꼭 비행기를 타겠다’는 일념이었다. 훈련을 받으면서도 힘들었지만 직접 비행기를 조종해서 올라가 봤던 하늘의 색깔과 느낌을 잊을 수가 없었다.

조종사의 장점이자 단점은 근무 스케줄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보통 회사원들은 월~금요일 정해진 시간 동안 근무하지만, 항공기 조종사의 경우 규칙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 집안 경조사가 많은 주말에 일하는 경우가 많아 남들과 같은 시간을 공유하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새벽 첫 비행 중 일출을 봤을 때, 저녁 비행 중 일몰을 볼 때면 항공기 조종사가 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비행 중 가장 아름다웠던 장면은 미주에서 캐나다 북쪽으로 넘어올 때였다. 겨울에 이 부근을 비행하다 보면 오로라를 볼 때가 있다. 3~4시간 동안 오로라가 끝없이 펼쳐진다. 비행기에서 그 모습을 볼 때면 마음 한구석이 저릿해지기까지 한다. 또 여객기가 아닌 화물 운송기를 운항할 때가 있다. 보통 여객기가 다니지 않는 시간대에 비행한다. 한번은 알래스카의 빙하가 흘러내리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때의 전율은 잊을 수가 없다. 하늘을 난 뒤에는 전혀 새로운 공간에 떨어진다. 빠른 시간에 공간을 옮기는 이 느낌을 사랑한다.

항공 기술이 발전하면서 조종사의 임무도 한결 쉬워졌다. 그러나 책임감은 여전히 크다. 자동조종장치(Auto Pilot)를 이용해 조종사들이 운항한다고 생각하지만, 대부분 이·착륙은 조종사가 수동으로 조종하는 경우가 많다. 특정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관제소와 이야기한 후 고도를 수동으로 상승시키거나 강하시키기도 한다. 자동 조종장치는 조종사를 보조하는 기계일 뿐이다. 오류가 날 수도 있으므로 이를 맹목적으로 믿어서는 안 된다. 이 장치가 고장 났을 때 조종사가 수동으로 조종할 수 있도록 조종실에 탑승할 때는 항상 이와 관련된 책자를 가지고 타야만 한다. 예전에는 기체가 발달하지 않아 한번 비행을 할 때 여러 사람이 비행기에 탔어야 했다. 비행기를 조종하는 조종사, 항법사, 기내정비사, 통신사 등 여러 사람이 조종실에 타고 책임을 나눠서 맡았다. 그러나 기체가 발달하면서 항법사, 기내정비사, 통신사가 했던 일들은 기계가 하게 되었고, 조종사는 그 기계를 다뤄야 했다. 그만큼 조종사의 책임이 커진 것이다. 이외에도 안전 비행을 위해 안경을 끼는 조종사는 안경을 꼭 두 개를 가지고 타야 하며(안경이 잘못됐을 경우를 대비), 기내식이 잘못됐을 경우를 대비해 기장과 부기장이 각각 다른 기내식을 먹어야 한다.

착륙(landing)은 항공기를 조종할 때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항공기가 공중을 비행할 때에는 태풍이나 뇌우 등 극히 몇 가지 상황을 제외하고는 크게 날씨의 영향을 받지 않지만, 공항 활주로에 뜨고 내릴 때는 영향을 받는다. 그중 가장 영향을 많이 주는 것이 바람이다. 항공기가 이착륙하는 데 바람이 강하게 불면 하드 랜딩(Hard Landing, 항공기 바퀴가 활주로에 심한 충격을 받을 만큼 급격하게 떨어지며 착륙하는 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 바람이 굉장히 많이 불던 날, 공중에서부터 기체가 심하게 흔들린 적이 있다. 비행기가 너무 흔들리니 승객 모두가 랜딩을 할 때 ‘쾅’ 하는 큰소리와 함께 거칠게 땅에 내릴 것이라고 예상을 한 것 같다. 긴장된 순간 ‘쾅’ 하는 소리도, 기체의 흔들림도 없이 조종간을 잘 잡아서 부드럽게 랜딩을 했다. 비행이 끝나고 승객들이 내린 후 사무장이 “기장님, 들으셨습니까?” 하고 말을 건넸다. 기체 엔진 소리가 시끄러워 아무 소리도 못 들었다고 하자 랜딩을 할 때 승객들이 박수를 치며 감탄했다고 했다. 굉장히 보람되고 뿌듯한 순간이었다.

“승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여러분을 모시고 가는 이 비행기의 기장 성일환입니다. 오늘 날씨는 17도로 화창한 하늘을 보이고 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승객에게 건네는 기장의 첫인사다. 이 방송을 할 때면 오늘도 무사히 그리고 편안한 비행을 하자고 속으로 다짐한다. 기장은 많은 사람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떠한 순간에도 안전 최후의 보루는 나, 바로 ‘기장’이라는 사실이다. 하늘 위에 떠 있는 비행기에서는 내가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 안전을 기본으로 함께 일하는 부기장, 승무원 그리고 승객 모두 나로 인해 조금 더 편안하고 행복한 비행이 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베풀어야 한다. 예를 들어 터뷸런스(tubulance, 난기류)가 심한 구간을 통과해 기체가 흔들릴 것 같을 때, 관제소와 얘기한 후 고도를 살짝 변경하면 승객이 좀 더 편안하게 비행을 할 수 있다. 오늘도 승객들의 즐거운 비행을 위해 안전하고 편안하게 운항하고 싶다.

[- 더 많은 기사는 톱클래스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