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9 재보선 이후 깊어지고 있던 새정치민주연합 내 친노(親盧)와 비노(非盧) 간 갈등이 지난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6주기 추도식을 계기로 폭발 일보 직전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비노 진영에선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뿐 아니라 김한길 전 대표 등에게도 야유와 욕설이 쏟아진 것과 관련, "친노와 비노가 더 이상 함께 가기 힘든 것 아니냐"는 우려가 터져 나왔다. 당내 주요 인사들도 "이렇게 계속 싸우다간 다음 총·대선도 진다"고 했다. 당장은 친노를 중심으로 한 야권 지지층이 결집하겠지만, 결국 중도층이 떠날 것이란 얘기다. 범친노계로 분류되는 한 중진 의원도 "추모객의 인민재판을 보는 것 같더라"며 "적대적이고 배타적인 모습 때문에 지난 총·대선에서 진 것인데 걱정이 많다"고 했다.

추모사 읽는 노건호 - 노무현 전 대통령 아들인 노건호씨가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 전 대통령 6주기 추도식에 참석해 추도사를 읽고 있다.
물세례 맞는 김무성 -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6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뒤 돌아가는 길에 추모객이 뿌린 물세례를 맞고 있다.

김한길 전 대표는 24일 페이스북에 "'우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누구보다 더 많이 사랑한다'고 주장하면서 자신들(친노)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함부로 욕하고 삿대질해대서야 되겠느냐. (추도식에서 욕설과 야유를 들은)천정배·김한길이 없었으면 노 대통령도 없었다는 말도 있다"고 썼다. 김 전 대표는 또 자신을 차별당하고 있는 '흑인'에 비유하면서 "흑백 차별의 벽을 허물 수 있는 건 백인(문재인과 친노)이다"라고 했다.

김 전 대표는 2002년 대선 때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적잖은 역할을 했다. 당시 천정배 의원은 대선 경선 초기부터 현역 의원 중 유일하게 노 전 대통령 편에 섰었다. 하지만 현재 김 전 대표는 비노계 대표인사 중 한 명으로 문재인 대표와 각을 세우고 있다. 천 의원은 탈당한 뒤 최근 광주 서을 보선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됐다.

박지원 의원은 추도식 참석 전 트위터에 "왜 (추도식에) 오느냐고 갖은 욕설을 들었다. 이는 언어폭력이 아니라 역지사지로 풀 문제"라고 했다. 추도식이 치러진 23일 권양숙 여사가 있는 봉하마을 사저에서는 야당의 전·현직 정치인들이 대화하는 과정에서 입에 담긴 힘든 욕설까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무성 대표를 비판하는 노건호씨의 추도사에 대해서도 비노 진영에선 "그게 생전에 통합을 강조해온 노무현 정신이냐"는 비판이 나왔다. 한 재선 의원은 "건호씨의 생각이 친노의 본질이자 민낯"이라며 "아버지를 생각하는 자식의 분노심이야 이해가 가지만, 전 국민이 다 보는 앞에서 그것도 제삿날에 적절치 않은 행동"이라고 했다.

그러나 친노 진영에선 "이번 추도식을 통해 비노 인사들이 국민 생각이 어떤 건지 알게 됐을 것"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한 친노 성향의 의원은 건호씨 추도사에 대해 "할 말 한 것 아니냐"며 "속으로 '잘한다'고 응원했다"고 했다. 김경수 노무현재단 봉하사업부 본부장은 "대통령의 아들로서 '노무현을 그만 놔달라'는 뜻"이라며 "NLL 발언 사태, 자원외교 비리에서까지 이름이 나오니 오죽하면 그랬겠느냐"고 했다.

노무현 정부 때 노사모를 이끈 문성근씨는 트위터에서 "여당 대표가 예의에 어긋난 짓을 벌인 것'이라고 썼다. 명계남씨도 트위터에서 "야당 정치인들, 노건호씨에게서 한수 배웠나? 새누리에 질질 끌려다니고 자기 살겠다고 동료까지 죽이려 혈안인 당신들"이라고 했다.

하지만 진보 진영 일부에선 쓴소리도 나왔다. 진보 성향의 평론가인 고종석씨는 트위터에서 "노건호씨의 날선 돌출 발언을 꾸짖는 이가 하나도 없다는 데 놀랐다. 그쪽 사람들이야 카타르시스를 느꼈겠지만, 제3자에게 어떻게 비칠지는 전혀 생각 못 했나"라고 했다. 조국 서울대 교수는 "김무성 대표에게 물병을 던진 이의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김 대표는 미소지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