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식 디지털뉴스본부 취재팀장

북·중·러 3국의 국경이 만나는 두만강 하구 팡촨(防川)에 '토자패(土字牌)'라는 비석이 있다. 19세기 말 청나라 대신 오대징(吳大澂)이 제정 러시아와 협의해 세운 국경 경계비이다. 이 비석에는 중국의 비애가 숨어 있다. 청나라는 1860년 베이징조약으로 두만강 하구를 포함한 연해주를 러시아에 빼앗겼고, 그로 인해 이 비석에서 불과 15㎞ 거리인 동해(東海)로 나갈 출구를 잃었다. 거대한 만주가 해상교통로가 단절된 맹지(盲地)가 돼버린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이달 초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열린 2차대전 승전 70주년 열병식에서 한껏 밀월 관계를 과시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된 열병식에서 중국군 의장대는 참가 10개국 중 맨 마지막에 등장했다. 러시아는 당초 9번째였던 순서를 바꿔 중국이 '피날레'를 장식할 수 있게 배려했다.

이 정도면 중국 여론이 감격할 것 같은데 실상은 정반대였다. 이 소식을 전한 중국 관영언론 기사의 댓글은 러시아에 우호적인 것을 찾을 수 없었다. "동북(東北)을 해방시킨다고 와서 공장과 기계 다 뜯어가고, 여자들은 (겁탈이 두려워) 거리에도 못 나갔는데…" "다 썼으면 블라디보스토크부터 돌려주시지" 같은 글은 그나마 얌전했다. 원색적인 욕설이 난무했고, "어떻게 저런 나라와 우방이 되느냐"고 시 주석을 공격한 글도 있었다.

중국 지식인 중에는 러시아라면 고개를 가로젓는 이들이 많다. 2차대전 말기인 1945년 일본군의 무장 해제를 위해 중국 동북지역에 진주한 소련군은 이 지역을 공포에 빠트렸다. 수시로 민가를 약탈하고, 부녀자를 겁탈했다. 중공군 고위 지휘관이 대낮에 강도를 당하고 살해된 일도 있었다. 1946년 국제 여론에 밀려 철수할 때는 이 지역의 공장 설비와 기계를 대거 뜯어갔다. 그 규모가 당시 가격으로 100억달러어치나 됐다고 한다.

이런 과거에도 불구하고 중·러 관계는 지난 2년여 동안 전례 없이 가까워지고 있다. '동맹'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시 주석은 취임 후 첫 방문국으로 미국 대신 러시아를 택했다. 상호 방문 등을 통해 양국 정상이 만난 횟수만 11차례나 된다. 작년에는 4000억달러 규모의 시베리아 천연가스 공급 계약을 타결했고, 매년 합동 훈련을 할 정도로 군사적으로도 밀접해지고 있다.

중국이 역사 문제로 일본과 정면 대립하면서도 러시아에 대해서는 과거사를 묻고 넘어가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러시아는 중국이 국경을 맞대고 있는 14개 국가 중 가장 큰 나라이다. 중국이 경제 발전에만 매진하려면 중·러 관계의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러시아는 또 거대시장이자 후방 에너지 공급 기지로서 경제적 가치가 크다. 미·일 동맹에 대항하는 한 축으로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런 전략적 이해가 과거사보다 우선한다고 보는 것이다.

조선일보 주최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에 참석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역사에 갇혀 있었다면 인도와 영국은 아무것도 얻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과거사 문제는 결코 소홀히 할 수 없지만 우리 외교가 일본의 도발을 뒤쫓아 다니느라 전략적 페이스를 잃는 것도 안 될 일이다. 그러기에는 동북아의 국제 환경이 너무도 다급하게 변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