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사(연명치료 중단)와 관련된 논의가 우리 사회에 처음 제기된 것은 1997년 이른바 ‘보라매병원 사건’이 일어나면서부터다. 이 사건은 외상에 의한 뇌출혈로 뇌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던 환자가 부인의 요구에 의해 치료를 중단하고 퇴원한 후 사망한 사건이다. 당시 환자의 동생이 의료진을 살인죄로 고발했다.

대법원은 부인에게는 살인죄를, 환자를 퇴원시켰던 보라매병원 의사들에 대해 살인방조죄를 적용해 집행유예 판결을 내렸다, 이후 의사들 사이에선 환자의 인공호흡기 제거를 극도로 꺼리는 풍조가 생겼다. 회복이 불가능한 환자 가족이 치료 중단과 퇴원을 요구해도 의사들이 이 사건을 들먹이며 요구를 거부했다.

2009년 6월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1년 4개월동안 식물인간 상태로 연명치료를 받아 온 77살 김모 할머니에 대한 존엄사가 집행되기 전 의료진과 관계자들이 지켜보고 있다.

이런 풍조는 2008년 ‘김 할머니’사건을 통해 바뀌게 된다. 이 사건은 우리 법원이 ‘존엄사’를 인정한 첫 사례로, 사회 각계에서 ‘연명치료 중단’ 지침을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당시 김 할머니의 가족은 법원에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지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고, 정부가 존엄사에 대한 법률을 제정하지 않아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행복추구권이 침해됐다며 헌법소원도 냈다. 대법원은 김 할머니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 연명치료 중지를 인정했다.

이후 대한의사협회 등이 참여한 ‘연명치료 중지 지침 제정위원회’가 만들어졌고, 이 위원회는 만성 질병의 말기 환자나 3개월 이상 식물인간 상태가 지속된 환자 또는 그 가족의 요청이 있을 경우 인공호흡기·심폐소생술·혈액 투석 같은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2009년 6월 대법원의 존엄사 허용 판결로 김모 할머니의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의료진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그러나 명확한 관련 법규가 제정되지 않아 의료계가 만든 지침은 법적 타당성이 없었고, 일선에선 이 때문에 환자와 의사간 다툼이 생기는 경우가 많았다. 일부에선 “경영상 이득을 위해 장기 입원 환자를 꺼리는 병원과 치료비 부담에 짓눌린 환자가 제도를 악용할 소지가 있다”는 반대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이는 법제화 논쟁으로 옮겨 붙으며, 18대 국회에서 잇따라 관련 법안이 발의됐다. 2008년엔 당시 한나라당 김충환 의원이 '호스피스·완화치료에 관한 법률안’을 제출한 것을 시작으로, 2009년엔 같은 당 신상진 의원과 김세연 의원이 각각 '존엄사법안’,'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권리에 관한 법률안' 등 3건을 내놨다. 그러나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법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러던 2013년 정부가 나서 과학계 7인, 윤리계 7인, 정부위원 6인으로 구성된 대통령소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를 통해 회생 가능성이 없고, 원인 치료에 반응하지 않으며, 급속도로 약화하는 즉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 한해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특별법 제정을 권고하는 안을 발표했다. 이는 연명의료의 정의와 결정 대상, 환자 의사 확인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첫 사회적 합의였다.

다음 달 김재원 의원이 제출하는 ‘임종과정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안’은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의 사회적 합의 이후 ‘연명치료’의 개념과 이행·범위 등을 포괄적으로 정의한 첫 입법안으로, 위원회의 권고안을 토대로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