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윤 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

20세기가 막 시작된 1901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한 병원에 52세 여성이 입원했다. 그녀는 수년 전부터 남편이 외도한다는 망상을 보였다. 기억장애가 심했고, 주변 사람을 폭력적으로 대했다. 다른 질문에 같은 대답을 반복하는 이른바 보속증(保續症)도 있었다. 가족을 못 알아보는 얼굴 인식장애도 보였다. 그녀는 바로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알츠하이머병 치매라는 이름으로 진단된 아우구스테 데터(1850~1906)다.

한 아이의 엄마인 그녀는 40대 후반부터 인지기능 장애를 보이기 시작했다. 엉뚱한 생각을 사실로 믿는 망상, 수면장애, 야간 배회 등 증상이 더해졌다. 철도 노동자였던 남편은 그녀를 정신병동에 입원시켰다. 당시 그녀를 진찰한 의사가 알로이스 알츠하이머(Alzheimer)였다. 알츠하이머 박사는 그녀에게 자신의 이름을 써보라고 했으나 그녀는 쓰지 못했다. 그러고는 반복해서 이야기했다. "나는, 나 자신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녀는 점차 인지기능 장애가 악화돼 거의 말을 하지 못하는 말기 상태가 됐고, 입원한 지 5년 만에 죽음을 맞았다. 뇌는 사망 후 부검됐고, 원인 질환을 찾기 위한 신경병리 검사가 진행됐다. 당시는 65세를 넘어 생존하는 것이 흔하지 않던 시기였다. 그 이전에 대부분 사망했기에 고령화에 따른 치매 발생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더욱이 노인의 인지기능 장애를 노화에 따른 생리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였다. 다만 45~60세 나이에 아우구스테처럼 서서히 인지기능이 감소하고 점차 심해져서 치매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이 발견돼 의학계의 관심을 끌었다.

(위 왼쪽부터)그가 기록한 환자 의료 기록, 처음 알츠하이머병 발견한 독일 의사. (아래 사진)알츠하이머병 1호 환자‘아우구스테 데터’.

알츠하이머 박사는 동료와 함께 사후 기증된 그녀의 뇌 조직에서 새로운 병리 소견을 발견했다. 독성 단백질이 축적된 아밀로이드반과 신경섬유 농축체였다. 이것들이 오늘날까지 알츠하이머병 치매를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병리 소견으로 꼽힌다. 이후 아우구스테가 앓았던 그 질환은 알츠하이머병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그녀가 첫 번째 환자가 됐다.

그때는 알츠하이머병이 비교적 젊은 나이에 치매를 일으키는 질환으로 여겼다. 노인에게 발생하는 치매는 알츠하이머병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봤다. 1970년대에 와서야 노인성 치매 대부분이 알츠하이머병에 의한 것이라고 인식하기 시작했다.

아우구스테에게 치매를 일으킨 질병 유전자가 밝혀진 것은 사망한 지 1세기가 지나서였다. 결국 그녀는 유전자 이상에 의한 조기 발현 알츠하이머병으로 확인됐다.

뇌과학의 새로운 사실은 기증된 뇌 연구에서 나온다. 특히 아우구스테처럼 사망 전 상태가 자세히 기록된 환자의 뇌는 신경과학 연구에 가장 중요한 요소다. 이 때문에 선진국은 환자의 뇌를 기증받아 연구하는 뇌 은행(brain bank)을 운영한다. 한국인의 치매 연구를 발전시키려면 우리도 뇌 은행을 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