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성이 울리고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마치 처참한 전쟁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기억하기도 싫다. 악몽이 평생 계속될 것 같다” ….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내곡동 예비군 훈련장에서 총기를 난사한 최모(23)씨. 그와 함께 사격 훈련을 받은 예비군들은 “끔찍하고 참혹한 광경을 다신 잊을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최씨는 이곳 사격장 1사로(射路)에 엎드린 채 자신의 뒤에 총 없이 대기하던 예비군(부사수)과 2·3·5사로에 있던 예비군에게 7발을 난사했고, 자기 이마에도 한 발을 쐈다.

예비군 총기 난사 사건 하루가 지난 1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내곡동 강동·송파 예비군 훈련장 예비군사격장 사고현장을 군 관계자들이 공개하고 있다.

지난 12일부터 최씨와 함께 훈련을 받던 예비군 500여명은 예정보다 3시간 빠른 14일 오후 2시쯤 퇴소했다. 사건 당시 13사로에서 최씨와 동시에 사격 훈련을 했다는 박모씨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최씨가 총을 쏘기 직전 총구 돌리는 모습을 보고 2사로 뒤쪽에 있던 예비군(부사수)이 가장 먼저 도망쳤다. 그 장면을 보고 다들 깜짝 놀랐고, 4사로 예비군도 바로 뛰어서 탈출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상황에 미처 피하지 못한 1사로 뒤쪽 예비군과 2·3·5사로 예비군들이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박씨는 “최씨가 처음에 자기 뒤쪽에 있던 1사로 부사수를 쏜 다음 지향 사격 자세로 엎드려쏴 자세로 있던 2·3·5사로 예비군들을 차례로 쏴버리고 자살했다”면서 “언론에 공개된 유서는 전날 불침번 서면서 썼다 들었다”고 했다.

예비군 총기 난사 사건 하루가 지난 1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내곡동 강동·송파 예비군 훈련장 사고 현장을 군 관계자들이 공개하고 있다.

사건 발생 당시 대부분 예비군들은 사격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한 예비군은 “3발 쐈을 때 갑자기 ‘사격 중지’ 소리가 들렸고, 4발 쏜 다음 또 다시 들려 헤드셋을 벗었더니 중대장이 뛰어내려가라고 했다”며 “총탄 다 두고 뛰면서 1사로 쪽을 봤는데 (최씨가) 총을 쏘고 난리도 아니었다”고 했다. 예비군 이모(25)씨는 “최씨가 사격 훈련 직전 ‘1사로로 가야 표적이 잘 보인다’며 본인이 꼭 1사로로 가야겠다고 고집을 부렸는데, 다 계산된 행동이었다”고도 했다.

최씨의 바로 앞 조에서 사격을 했다는 예비군 양모씨는 “사격장에서 막 내려와 대기하는데 갑자기 탕탕탕 하는 총소리가 났고, 사격장에서 수십명이 막 뛰어내려왔다”고 했다. 그는 “그 다음부터는 제대로 된 기억도 없다. 더 이상 생각하기 싫다”고 했다. 사격장 인근에 있던 또 다른 예비군 A씨도 “피해라! 피해라! 하는 소리와 함께 언덕 위 사격장에 있던 예비군들이 밀물처럼 내려왔다. 조교들도 같이 뛰어 내려왔고, 한 마디로 아비규환이었다”고 했다.

총기사고가 발생한 서울 내곡동 강동송파 예비군훈련장에 입소한 예비군들이 14일 오후 귀가하고 있다.

한 예비군(26)은 “탕탕탕 총 소리 직후 한 예비군의 ‘악’ 하는 소리가 났다. 잠시 후에는 ‘위생병! 위생병!’ 하는 소리와 함께 들것이 올라갔다”면서 “누가 이런 일을 상상했겠냐만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고 했다. 사건 후 예비군 중에는 고혈압 증상으로 두통을 호소하거나 구토를 한 이도 있었다고 한다.

국방부는 이날 총기 난사 사건 현장을 언론에 공개했다. 강동·송파 예비군 훈련장 위병소 정문에서 1㎞쯤 떨어진 사격장의 1∼10사로에는 노란색 헌병 폴리스라인이 쳐졌다. 최씨가 있던 1사로와 3·5사로에는 특히 핏자국이 많이 남아있었다. 사건 당시 긴박한 상황을 보여주듯 전투모와 전투화, 탄약통과 탄피받이 등 장구류가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군은 “부상 당한 예비군의 응급처치 과정에서 벗긴 것도 있다”고 설명했다. 6∼10사로 주변에는 들것과 거즈 뭉치가 뒹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