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열 산업1부 차장

얼마 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방미(訪美) 소식을 들으면서 부아가 치밀지 않았던 한국인은 드물 것이다.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아베 관련 뉴스를 보면서 '강한 자에게는 약하고, 약해 보이는 자에게는 한없이 오만한 민족이 일본인가'라는 생각마저도 해봤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외면하고, 사죄할 곳에 사죄하지 않는 아베 총리를 기립 박수로 맞는 미국의 모습에서 약간의 배신감도 들었다. 역시 글로벌 세상은 힘과 이해관계가 지배하는 곳이란 불편한 진실에 마주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눈길 끄는 뉴스 하나를 봤다. 지난달 27일 일본의 자원 개발 업체인 국제석유개발주식회사(INPEX)가 아랍에미리트(UAE)의 아부다비 육상 유전의 이권(지분 5%)을 확보했다는 소식이었다. 저(低)유가를 활용한 일본의 해외 우량 자원 확보가 가시화된 것이다. 아부다비 육상 유전은 하루 160만배럴을 생산하는 세계 6위의 초대형 유전이다. 이로써 INPEX는 일본 내 석유 수요의 약 3%에 해당하는 하루 8만~9만배럴을 40년간 조달할 수 있게 된다. 아베 총리가 직접 나서 "일본의 석유 안정 공급 확보에 크게 기여할 자원 외교의 큰 성과"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자원 개발을 둘러싼 정치 공방을 하느라 해외 자원 개발 자체가 올스톱됐는데 일본은 이렇게 한 발짝씩 나아가고 있다. 이뿐이 아니다. 최근 LG경제연구원에서 나온 '저유가에도 에너지 스마트화에 주력하는 일본 산업계'란 보고서를 보면 더욱 아찔하고 속이 상한다. 에너지 스마트화는 전기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기술이다. 많은 전문가는 "저유가 시대에 우리 경제가 꼭 해야 할 두 가지는 해외 자원 개발과 스마트 에너지 사업의 지속"이라고 말한다. 비용이 쌀 때 자원 개발 투자를 하고, 저유가라고 남들이 게을리할 때 더 부지런히 스마트 에너지에 투자해야 한다는 뜻이다.

지난 2월 도쿄에서 열린 '스마트 에너지 위크 2015'를 보면 일본의 노력을 가늠하게 된다. 이 행사는 수소연료전지, 스마트 그리드 등 전 세계 신재생에너지 분야의 최고 기업 1600개사가 몰려 대성황을 이뤘다. 이미 상당수 일본 대기업들은 업종을 망라해 스마트 에너지 사업에 도전 중이다. 히타치는 스위스 ABB와 손잡고 전력 손실을 혁신적으로 낮출 기술 개발을 위한 합작회사를 만들었다. 파나소닉은 전기량 목표치를 초과하면 조명의 조도를 자동으로 떨어뜨리는 시스템 개발에 나섰고, 건설사인 오바야시구미는 빅데이터를 활용해 공조(空調) 온도와 조명 밝기를 자동 조절하는 시스템을 개발해 새로운 수익원을 만들고 있다. 일본이 자랑하는 후지전기·쇼와텐코·도레이 등 유수한 소재·부품 기업들도 스마트 에너지 사업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쯤 되면 최소한 에너지 분야에서 5~6년 후 한·일 간의 경쟁력 차이는 불을 보듯 뻔해진다. 우리의 목표는 반일(反日)이 아니라 극일(克日)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봐야 할 일본은 '아베'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