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디즈' 신혜성 대표

"평생을 기술 개발에 몸 바친 중소기업 사장님이 번번이 문전박대를 당했죠. 담보가 없었거든요. 종업원 100명을 해고시켜 원가를 절감한 기업은 '좋은 회사' 소리를 들었고요. '뭔가 잘못됐다' 싶었습니다."

신혜성(36·사진) 와디즈 대표의 말이다. 대표는 증권·은행에서 9년 동안 기업금융 업무를 담당했다. 직접 방문한 회사만 500곳이 넘는다. 그런데 기업을 알면 알수록 고민이 깊어졌다. 신 대표는 "증권에선 주가가 오를 수 있는 곳, 은행에선 돈을 안 떼이는 곳이 좋은 회사였다"며 "더 다양한 관점에서 기업을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고 했다.

'좋은 회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은 급기야 창업으로까지 이어졌다. 2012년 5월 탄생한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와디즈'다. 가치 있는 회사들을 지원하겠다는 비전을 갖고서였다. 지난 3월까지 약 300건의 펀딩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모금 성공률이 70%나 된다.(와디즈는 프로젝트별로 5~7%의 펀딩 수수료를 받는다) 지난달 29일, 신혜성 대표를 만나 그가 생각하는 좋은 기업과 크라우드 펀딩 생태계를 직접 들어봤다.

―설립 초기, 국내 크라우드 펀딩 분야는 '불모지'에 가까웠을 텐데.

"2012년 초반, 스타트업 모임에 강연을 갔는데, 한 청년 기업가가 '사기꾼이 판을 치겠다'며 비아냥거리더라. 지인들에게 '돈 되겠냐'는 무시와 질타도 많이 들었다. 당시 몇몇 펀딩 플랫폼이 운영되긴 했지만, 해외에 있는 모델을 그대로 들여온 방식에 불과했고 잘 굴러가지도 않았다. 인식도, 시스템도 미비했던 거다. 성급히 사업적으로 접근해선 승산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크라우드산업연구소'를 먼저 차렸다. '나부터 정확하게 이해해야 시장에 알려줄 수 있겠다'는 판단에서다. 관련 도서('세상을 바꾸는 작은 돈의 힘, 크라우드 펀딩')를 국내 최초로 출판했고, 미국에 있는 회사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글로벌 리포트'도 만들었다. 크고 작은 강연도 100회 이상 진행했다. 본격적인 사업을 위해 1년 동안 '땅 파는 작업'을 했던 셈이다."

―결국 이듬해 6월 펀딩 플랫폼을 론칭했는데.

"실상은 암담했다. 우리가 유명 온라인 마켓이었거나, 파는 게 '아이폰'이었다면 모를까. 우리는 플랫폼도 신생인데, 상품도 신생 기업의 것들이었다. 누가 돈을 내겠나. 사람들을 설득할 포인트가 없었던 거다."

―어떤 처방을 내렸나.

"'숫자'는 포기하고, 서비스를 뜯어고치기 시작했다. 모금에 참여한 사용자들과 워크숍을 진행했는데, 고객들은 참여자로서 펀딩 프로젝트와 함께 호흡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더라. 크라우드 펀딩의 핵심이 '인터렉션(interaction·상호 작용)'이란 걸 그때 깨달았다. 소통을 극대화시키는 장치들을 하나둘 추가했다. '땡큐레터'나 '댓글'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교육하고, 사이트 업데이트 사항이 구매자의 메일로 자동 연결되도록 시스템을 갖췄다. '100인의 배심원단'(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펀딩 시작 전 개설 여부를 심사하는 제도) 등의 차별화된 소통 창구도 늘렸다. 그렇게 다시 1년이 지나고 나서야 진짜 비즈니스가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2014년 6월 무렵부터 매달 100% 정도씩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대중이 돈을 내는데, 기업의 담보나 실적이 없다는 건 위험 요소일 수 있다. 이를 어떻게 해결하나.

"바로 '투명성'이다. 크라우드 펀딩은 정보의 비대칭을 굉장히 경계하기 때문에, 기업이 공개해야 하는 정보들을 누락하거나, 투명성이 떨어지면 펀딩을 진행할 수 없다. '커뮤니티 금융'도 적극 활용한다. 지인 커뮤니티는 펀딩이 진행되면서 점점 다양하고 촘촘한 커뮤니티로 확장된다. 커뮤니티는 후원자인 동시에 감시자다. 그 과정에서 댓글 등의 피드백을 통해 지속적으로 검증이 이뤄지고, 위험도가 낮아지는 것이다."

―와디즈는 비영리나 사회적 경제 섹터를 위한 플랫폼인가.

"우린 영리·비영리 선 긋기를 싫어한다. 기술이 탁월한 기업이 직원까지 중요시한다면, 웬만한 사회적기업보다 훌륭하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사회적기업·소셜벤처·스타트업·협동조합 등의 조직이 우리 플랫폼의 성격과 맞을 뿐이다. 파트너십을 맺는 범위는 굉장히 다양하다. '미스크(MYSC)'나 '한국사회투자'같이 소셜 임팩트 투자기관도 있고, 산업은행 같은 일반 금융기관도 있다. 시중 카드사 포인트로 펀딩에 참여할 수 있는 방식을 논의 중이며, 온라인 오픈마켓에선 펀딩이 끝난 기업들에게 입점 제안을 하기도 한다. 미래창조과학부, 금융위원회 등 정부 부처와의 접점도 많다. 결국 우리는 모든 이해관계자의 허브를 추구한다. 사회적경제 기업과 고객을 잇고, 영리와 비영리도 잇는다."

―가칭 '크라우드 펀딩법'이 연내에 국회를 통과할 분위기다. 가장 크게 달라지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까지는 소비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있는 기업만 펀딩이 가능했다. 하지만 법이 시행되면, 누구나 주식이나 채권을 크라우드 펀딩에서 발행하고 투자금을 유치할 수 있다.(10억원 한도) 지지자 10명이 500만원씩 모아주면 5000만원을 펀딩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상장하지 않아도, 벤처캐피털의 선택을 받지 못해도 초기 투자금을 유치할 수 있다. 현재 미국·영국·호주·일본·중국 등에서 이 법이 시행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선 얼마 전 국회 정무위를 통과해 하반기 본회의 통과가 유력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