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기술과 제품이 등장하는 시대이다. 언론에는 3D프린터나 유전자 가위, 그리고 사물 인터넷과 같은 첨단 기술의 등장이 어떻게 우리 삶을 변화시킬지에 대한 미래 전망이 가득하다. 혁신을 이끈 엔지니어와 사업가들은 새로운 미래를 창출해내고 있는 혁신 시대의 영웅으로 칭송된다. 비행기·원자력·인터넷 등 20세기 혁신 예찬자들에게 기술의 역사는 발명과 혁신의 연대기였으며, 동시에 사회 변화의 동력에 관한 기록이었다.

'낡고 오래된 것들의 세계사'(데이비드 에저턴 지음, 휴먼사이언스)는 혁신을 중심으로 신기술이 가져올 미래를 전망하는 잘못된 미래주의에 대한 비판과 성찰을 담고 있다. 저자는 20세기 혁신 예찬자들의 예언은 많은 경우 그 기대에 미치지 못했음을 지적한다. 교통과 통신수단의 혁명에도 불구하고 교류와 평화보다는 여전히 국가 간 대립과 전쟁의 위험이 존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용하는 기술 대부분은 이미 오래전에 발명된 것이며, 여전히 석탄·우편·콘돔처럼 오래된 기술이 원자력·인터넷·피임약과 같은 새로운 기술과 함께 공존하며 사용되고 있다. 때문에 기술의 사용을 중심으로 기술과 사회의 상호작용을 분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두갑 서울대 교수·과학기술사

일례로 기술의 혁신만큼이나 기술의 유지와 관리에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항공사들은 비행기를 유지, 관리하는 비용이 이를 구매하는 비용보다 더 크며, 많은 엔지니어와 정비사들 또한 고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신기술의 도입은 종종 보다 큰 비용과 새로운 사회집단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기술 혁신을 지향하는 애플과 같은 기업에 주목하지만,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목제 가구를 생산하는 이케아와 같은 기업이 어떻게 엄청난 규모의 생산과 유통 활동을 담당하는 세계 최대 기업으로 성장했는지 주목하지 않는다.

에저턴의 책은 또한 세계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가난한 나라들에서 신기술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보여준다. 서아프리카의 가나와 같이 기술 수준이 낮고 관련 엔지니어가 없는 나라에서는 사실 자동차가 고장 나도 이를 수리할 방법이 없다. 가나의 수리공들은 버스가 고장날 때마다 폐타이어와 구리선, 못 등과 같은 구식 기술을 사용해서 이를 수리하고, 나중에는 거의 매일 버스를 수리해 저렴한 운송 수단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신기술이 사회를 바꾼다기보다는 사회가 필요에 맞게 기술을 바꾸고 창의적 방식으로 이를 이용해 나간다는 것이다. 이 책은 흥미로운 사례들과 날카로운 분석을 통해 사회 속 기술의 모습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