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오전 인천공항에서 비행기 출발 시각이 다 되도록 탑승 게이트에 나타나지 않는 중국인 남녀 승객을 다급히 찾는 방송이 울려 퍼졌다. 이날 중국 안후이성 허페이행(行) 항공기를 타고 귀국길에 오를 예정이던 20대 중국인 커플을 찾는 방송이었다. 비행기 출발 시간이 임박해 공항에 도착한 이들은 간신히 출국수속을 마치고 비행기에 짐을 싣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공항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탑승구로 달려가던 여성이 갑자기 "면세점 인도장에서 구찌 가방을 찾아오는 걸 깜빡했다"며 일행을 멈춰 세웠다. 공항 직원과 남자친구는 "면세품을 찾을 시간이 없으니 구매를 취소하고 비행기를 타자"고 설득했지만, 이 여성은 "가방을 찾기 전에는 비행기를 못 탄다"고 버텼다. 결국 이 커플은 비행기 탑승을 포기하고 명품 가방을 택했다.

하지만 그 사이 이들이 타려던 비행기는 이륙하기 위해 활주로까지 이동했다가 두 사람이 타지 않은 사실을 뒤늦게 확인하고 탑승구로 되돌아와야 했다. '승객이 타지 않으면 그 승객의 짐도 내려야 한다'는 보안 규정에 따라 두 사람의 짐을 내려야 했기 때문이다. 중국인 여행객의 '명품 사랑'이 138석 규모의 비행기를 회항시킨 셈이다.

중국인 관광객이 늘면서 관광업계에선 "유커(遊客·관광객)가 먹여 살린다"는 말이 나오지만, 인천공항과 항공사들은 이들 때문에 말 못할 속병을 앓고 있다.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쇼핑하거나 면세품 인도장에서 물건을 받으려고 기다리다 제때 비행기를 타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한 항공사 관계자는 "중국인들이 공항 직원 안내받으며 탑승 게이트로 허겁지겁 뛰어가거나 출발 10분 전에 탑승 소속 카운터에 와서 '태워달라'고 항의하는 모습은 흔한 풍경이 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한 중국인 여성이 이륙 2분 전에 탑승 게이트로 뛰어와 '엄마가 샤넬 백을 사느라 늦는데 조금만 기다려달라'며 울다가 결국 혼자 비행기를 타고 갔다"고 했다.

쇼핑을 하다 탑승 시간을 놓친 중국인 관광객 때문에 비행기 출발이 지연되거나 활주로로 이동하던 비행기가 탑승 게이트로 되돌아오는 일도 빚어지고 있다. 지난 18일 인천에서 중국 정저우로 가는 국내 항공기가 중국 관광객들이 면세품 인도장에서 물건을 찾다가 탑승 시간을 지키지 못해 출발이 1시간 넘게 지연됐다. 중국인 단체 관광객 48명 중 19명이 비행기에 타지 못했는데, 이미 비행기에 실려 있는 이들의 짐을 일일이 찾아 내리느라 출발이 늦어진 것이다. 지난 2월에도 인천공항에서 중국 항공사의 한 여승무원이 면세점에서 쇼핑을 한 뒤 늦게 오는 바람에 탑승 시간이 지연돼 승객들이 항의한 일이 있다.

인천공항에 따르면 매월 인천공항을 통해 입·출국하는 400만여명 가운데 중국인은 72만명이다. 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공항 내 면세품 인도장과 세금 환급 창구는 중국인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지난해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중국인들이 쓴 돈은 전체 국내 공항 면세점 매출액(약 2조원)의 35%를 차지했다.

공항 면세점에서 기내 반입량(10kg 이내 짐 한 개와 소형 가방 정도)을 초과해 쇼핑하는 '큰손' 중국인들이 늘면서 항공사들엔 또 다른 골칫거리가 생겼다. 기내 반입량을 초과하는 면세품은 규정대로라면 1㎏당 7000원의 추가 요금을 내고 화물칸으로 옮겨 싣는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이런 경우가 워낙 많아 비행기 출발이 지연되는 일이 빈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항공사협의회와 면세점협회는 지난달부터 중국으로 가는 주요 항공기 탑승 게이트에 커다란 상자를 하나씩 놓아두고 기내 반입량 초과 면세품을 모아 한 번에 비행기 화물칸에 무료로 실어주고 있다.

항공사 관계자는 "중국인 관광객들로 인한 지연 출발로 다른 고객들의 항의가 적지 않다"며 "'출국 수속 시간을 고려해 여유 있게 공항에 와달라'고 사전에 공지하는 방법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어 답답한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