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용중 정치부장

오늘 밤 재·보선 네 곳의 승부가 갈린다. 선거구마다 1명의 당선자와 여러 명의 낙선자들이 나오겠지만 여야 정당의 승리자는 없다고 생각한다. 만일 새누리당이 광주를 제외한 세 곳을 다 이긴다 해도 국민들 앞에서 환호할 수 있겠는가. '성완종 리스트'가 들춰낸 정권의 부패 의혹이 선거에서 면죄부를 받았다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강심장이라도 그렇게는 못할 것이다. 여당이 우세한 결과가 나온다면 아마도 "여나 야나 다 똑같이 (돈을) 받았을 것"이라는 유권자들의 심드렁함 덕분일 것이다. 지난주 갤럽 조사에 따르면 성완종 리스트에 나온 여당 인사 8명의 금품 수수 의혹이 사실일 것이라고 답한 응답자가 84%였다. 그런데 성 전 회장이 야당 인사들에게 금품을 줬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응답자도 82%였다. 도긴개긴의 차이도 안 나는 셈이다. 기성 정치가 역겹다 느끼는 유권자들이 대거 투표장에 나오지 않으면 아무래도 고연령층의 투표율이 높기 때문에 여당이 유리해질 가능성이 크다.

만일 야당이 4대0이나 3대1로 이겼다고 치자. 야당은 야권 분열을 극복했다면서 기뻐할 것이다. 그러나 내년 총선의 승기를 잡았다거나 차기 대선에 성큼 다가섰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러다가는 자칫 부메랑을 맞을 수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성 전 회장 자살(9일) 직전 지지율은 27.8%, 지난주 지지율은 29%(갤럽 조사)였다. 같은 시점 새누리당 지지율은 37.2%, 38%로 엇비슷한 추세다. 유권자들이 여야에 대한 생각을 바꾸기조차 귀찮아 한다는 뜻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한 중진 의원은 전화 통화에서 "유세 지원을 가보면 일반 유권자들은 별로 없고 운동원들만 모여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부패정권 심판론'을 내세웠지만 솔직히 호응이 크지 않다"고 했다. 그는 '성 전 회장을 두 차례 사면해준 것이 노무현 정권'이라는 새누리당의 물타기 전략이 어느 정도 통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새누리당의 한 수도권 의원은 "작년 7·30 재·보선 때와는 달리 이번 재·보선은 열기가 느껴지지 않는다"면서 "차가워진 민심이 내년 총선에서 어떻게 나타날지가 걱정"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실망스러운 대목은 여야의 자성(自省) 부족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총리 사퇴에 대해 선거 하루 전날 마지못한 듯 유감을 표명하면서 노무현 정권의 성 전 회장에 대한 두 차례 사면의 진실 규명을 강조했다. 야권에 역공을 취한 셈이다. 새누리당도 연일 "야당이 부정부패로 우리를 비판할 자격이 있느냐"고 하고 있다. 이군현 사무총장은 "우리 정치권이 모두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혼자' 또는 '먼저' 사과는 절대 못하겠다는 태도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번 사건이 터지자마자 '친박(親朴) 권력형 비리 게이트'로 규정했다. 성 전 회장의 복수심에 올라타 현 정권을 궁지로 몰아감으로써 정치적 이득을 보겠다는 전략을 짠 것이다. 그러나 8인의 성완종 리스트는 삼척동자가 보더라도 빙산의 일각이다. 해바라기처럼 늘 권력을 지향했던 그가 노무현·이명박 정권 때도 친박만 도왔다고 누가 믿겠는가. 그러니 유권자들 입장에선 새누리당도 밉지만 홀로 깨끗한 척하는 야당도 얄미운 것이다.

여야는 서로 상대방을 향해 침을 뱉고 있지만 그 침은 결국 자기 얼굴에 떨어지고 있다.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게 스스로 겸연쩍지만 선거 때라서 어쩔 수 없다는 식이다. 여야는 서로 손가락질하면서도 공동 잇속을 차리는 데는 찰떡궁합이다. 지난 3월 국회를 통과한 부패방지법(김영란법)은 100만원 이상 받은 공무원은 대가성이 없어도 처벌받지만 국회의원이 받는 후원금은 대가성이 있어도 500만원 이하는 적법하다. 국회의원만 '공직자'의 예외로 둔 것이다. 과거엔 보스가 큰돈을 모아 아래에 뿌려주는 '큰 부패'가 문제였으나 요즘은 각자 작은 돈을 끌어 모으는 '작은 부패'가 널리 퍼져 있다. 그간 여야가 때만 되면 정치 개혁을 부르짖었어도 이런 관행을 깨는 일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검찰은 재·보선이 지나면 기다렸다는 듯 여당에서 2~3명, 야당에서 1~2명을 구속시키는 정도로 구색을 맞출 것이고 야당은 특검을 강하게 밀어붙이려 할 것이다. 그러면 상설특검으로 할지 별도특검으로 할지, 특검의 수사 범위를 친박으로 한정할지 여야 전반으로 넓힐지를 놓고 여야는 지루한 공방을 벌일 수밖에 없다. 결국 여도, 야도, 성 전 회장도 모두가 패자(敗者)가 되고 마는 '낯 뜨겁고 공허한 설전(舌戰)'으로 대한민국의 2015년은 지고 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