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 비중이 4%를 넘어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특허·라이선싱·기술지도' 등을 통해 우리가 외국에서 벌어들이는 돈보다 외국에 지급하는 돈이 훨씬 많다. 2012년 기술 무역수지는 57억4000만달러 적자(赤字)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꼴찌다.

국가 R&D 투자가 맹탕이라는 또 다른 통계도 있다. 우리 국가 R&D 사업의 성공률은 2012년 기준 82%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편이다. 반면 국가 R&D 기술이 사업화로 이어지는 비율은 20%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영국의 70%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세금 지원을 받은 연구 과제에 실패하면 다음번에 연구비를 타기 어렵다는 이유로 연구원들이 사업화 가능성을 따지지 않은 채 무조건 성공할 수 있는 과제만 고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공 R&D를 통해 개발한 기술 19만건 중 75% 정도인 15만4000건이 전혀 활용되지 않고 있다.

국가 R&D 투자의 비효율성은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컨트롤타워가 없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과거 대통령 직속 기관이었던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이 정부 들어 미래부 산하 국가과학기술심의회로 바뀌면서 여러 부처가 관련된 연구·개발 사업을 조정할 수 있는 기능이 사라져버렸다. 올해 19조원에 이르는 정부 R&D 예산도 33개 부처 및 위원회가 잘게 쪼개 관장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다른 부처에서 이미 하고 있는 사업을 이름만 바꿔 추진하는 중복과 낭비가 적지 않다.

국가 R&D 예산을 제대로 쓰려면 과학기술 투자를 총괄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를 부활시키고, R&D 예산 지원과 성과 평가 체계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 예산을 타내려는 연구에 세금을 쏟아붓는 일은 이제 그만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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