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세레나'(감독 수잔 비에르)를 보면서, 그리고 이 영화에 출연한 브래들리 쿠퍼와 제니퍼 로런스를 보면서 피천득 작가의 수필 '인연'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일본인 소녀 아사꼬와의 만남을 담은 이 글의 마지막에 피 작가는 이렇게 썼다. "아사꼬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브래들리 쿠퍼와 제니퍼 로런스는 '실버라이닝 플라이북'(2012), '아메리칸 허슬'(2013)에 이어 '세레나'에서 세 번째로 호흡을 맞췄다. 앞선 두 작품에서 그들의 연기는 흠잡을 데 없었고 두 사람의 연기는 매끈하게 연출된 영화와 '함께' 빛났다. 하지만 '세레나'의 그들은 그렇지 못하다.

브래들리 쿠퍼와 제니퍼 로런스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열정적이고 야망 넘치는 목재 사업가 조지 팸버튼(브래들리 쿠퍼)은 우연히 만난 여인 세레나(제니퍼 로런스)에게 첫눈에 사랑을 느끼고, 결혼까지한다. 두 사람은 변함없이 사랑하고, 세레나의 뛰어난 경영 감각으로 조지의 사업도 번창하니 이들의 삶은 거칠 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조지의 오른팔로 여겼던 부하 직원이 팸버튼을 배신하고 조지의 과거와 세레나의 불임이 겹치면서 이들의 삶은 점점 무너져 내린다. 주인공의 이름을 제목으로 삼은 영화의 목표는 분명하다. 제목이 된 그 인물에 관해 이야기하겠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영화 '세레나'는 제니퍼 로런스가 연기한 세레나가 어떤 캐릭터(성격)이고, 그를 어떤 특정 상황에 부닥치게 했을 때, 어떤 선택을 하는지 지켜보는 영화가 돼야 한다. 이런 설정만 봤을 때, 제니퍼 로런스에게 세레나를 맡기는 건 최상의 선택이다. 그는 홀로 영화를 이끌어나갈 수 있는 카리스마와 연기력을 갖춘 몇 안 되는 여배우다. 여기에 그와 이미 좋은 호흡을 보여준 바 있는 브래들리 쿠퍼가 더해진다면 상은 다 차려진 셈이다.

그러나 영화는 산으로 간다. 정확히는, 산 주변을 맴돈다. 제목은 '세레나'인데, 영화에는 세레나가 없다. 세레나는 사랑에 미친 여자다. 세레나가 왜 사랑에 그토록 목을 매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영화의 가장 큰 목표다. 영화는 세레나의 입으로, 세레나의 행동으로, 또 그 행동에 대한 팸버튼의 반응으로 세레나를 말하려 하지만, 이 모든 게 헛돈다. 세레나의 '감정'을 다루지 못하고, 세레나와 얽힌 '사건'만을 다룬다. 세레나의 과거, 세레나의 사업 수완, 세레나와 사냥꾼, 세레나의 불임, 세레나의 질투는 한 데 모여 세레나의 내부로 들어가야 하지만, 정반대로 세레나를 흩뜨린다. 영화를 다 보고 나도 세레나가 누군지 알 수 없다. '세레나'는 구심력 없이 원심력만 작용하는 영화다.

상황이 이러하니 제니퍼 로런스와 브래들리 쿠퍼가 아무리 뛰어난 연기를 해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극의 전개와 별개로 존재하는 좋은 연기란 애초에 없다. 로런스는 그의 깊은 눈에 사랑, 질투, 광기, 좌절, 분노 등 모든 감정을 담아내지만, 그 눈빛은 어떤 감정적 여진도 남겨 놓지 못한다. 영화의 서사가 엉망이니 아무리 로런스가 열연해도 그 감정에 깊이가 생길 리 없다. 세레나의 액션에 주로 리액션을 하는 팸버튼을 연기한 브래들리 쿠퍼의 연기도 다르지 않다.

'세레나'는 2009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로 선정된 론 래시의 동명 장편 소설이 원작이다.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은 흔히 영화 '세레나'와 같은 실수를 한다. 소설을 요약해 영상화하면 된다는 패착이다. 장편소설을 두 시간 분량의 영상으로 압축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원작이 문장으로 표현한 이야기의 결을 영상 미학으로 전환하는 일이다. 이런 측면에서 '세레나'는 실패했다.

브래들리 쿠퍼와 제니퍼 로런스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