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2일 취임 첫 대국민 담화를 통해 '부패와 전쟁'을 선포했던 이완구 총리가 39일 만에 사의(辭意)를 밝히며 정작 본인이 가장 먼저 검찰에 소환돼 '사정(司正) 대상 1호'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되돌아보면 이해할 수 없는 임기응변식 해명이 오히려 의혹을 부풀렸고, 스스로를 옭아맨 자충수가 됐다. 일부에서는 처음부터 "성완종 전 회장과 친하게 지내면서 자주 만났으나, 돈은 받지 않았다"는 식으로 해명했더라면 이렇게 빨리 사퇴하는 상황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 총리가 나선 '기획성 사정'은 결과적으로 자신의 발등을 찍고 검찰 수사 전체의 불신만 키우는 꼴이 됐다.

국회 인사청문회 때 부동산 투기, 언론 외압, 병역 기피 등 각종 의혹을 안고 취임한 이 총리는 지난달 12일 긴급 총리 담화를 통해 "정부 역량을 총동원해 부패 사슬을 끊겠다"며 부패와 전쟁을 선포하고 나섰다. 과거 정권에서도 크건 작건 사정 수사가 있었지만, 총리 직책에 있는 책임자가 공개적으로 사정을 선포한 전례도 없고, 대대적 사정 수사는 성공한 사례가 거의 없어 부정적 시선이 많았다.

이 총리의 사정 예고는 곧바로 검찰의 포스코건설과 경남기업 압수 수색으로 이어졌다. 성 전 회장의 경남기업은 'MB 정부' 자원 외교 비리 수사의 첫 표적으로 지목됐고, 성 전 회장은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지난 9일 법원 영장실질심사 수시간 전 성 전 회장은 친박(親朴) 핵심 정치인 8명에 대한 금품 로비 내용을 적은 '메모'와 육성(肉聲) 인터뷰를 남기고 자살했다. 성 전 회장의 메모에는 이 총리 이름 석 자뿐이었다. 이 총리 측은 "성 전 회장과는 별다른 인연이 없다"며 의혹을 차단하고 나섰다.

하지만 성 전 회장은 육성 파일에서 "2013년 재·보궐 선거 때 3000만원을 줬다"고 폭로하면서 이 총리 금품 수수 의혹은 일파만파로 퍼졌다. 이 총리는 지난 14일 국회 대정부 질문 답변에서 "성 전 회장한테 한 푼도 받지 않았다. 돈 받은 증거가 나오면 목숨까지 내놓겠다"며 배수진을 쳤다.

하지만 그의 섣부른 해명은 의혹을 오히려 증폭시켰다. 이 총리는 처음에는 "성 전 회장을 잘 모른다"고 했다가 "동료 의원으로 만났을 뿐"이라고 말을 바꿨다. 성 전 회장 운전기사가 "2013년 4월 4일 성 전 회장이 이 총리와 선거사무소에서 단둘이 만났고, (3000만원이 든) 비타500 상자를 두고 왔다"며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폭로하자 이 총리는 "후보 등록 첫날이라 많은 사람이 왔다. 성 전 회장이 왔는지 모른다"고 했다가 "독대(獨對)는 하지 않았다"고 또다시 말을 바꿨다. 그러자 이 총리의 전(前) 운전기사까지 나서 두 사람의 독대 정황을 밝히자 이 총리는 사면초가 신세에 놓였다. 두 사람이 최근 1년 사이 200회가 넘는 전화를 주고받은 객관적 물증까지 등장하면서 이 총리는 사실상 '식물 총리'로 전락했다.

이 총리가 사의를 표명하면서 성 전 회장이 남긴 '메모 8인' 중 첫 검찰 소환 대상자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검찰은 성 전 회장 차량의 하이패스 기록과 내비게이션 기록을 분석하는 등 당시 상황을 재구성하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확실한 물증 확보와 목격자들의 증언 내용을 다지고 나서 이 총리를 소환해 조사할 계획이다.

검찰이 그를 소환할 때까지 '친하지 않았다' '그날은 만나지 않았다' '독대도 없었다'는 등의 발언을 뒤집을 확실한 근거가 확보되면 그가 검찰에서 '돈은 받지 않았다'고 말해도 쉽게 인정받기 어려울 것으로 법조계는 예상하고 있다.

TV조선 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