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박성철(75) 신원그룹 회장에 대해 추징금 부과에 그치지 않고 검찰 고발까지 한 것은 부실 기업 사주가 워크아웃(기업개선협약)이나 법정관리 등 기업회생 절차를 이용해 차명(借名) 등으로 경영권을 되찾는 길을 틀어막겠다는 것이다. 편법으로 회사를 되찾는 과정에서 거액의 탈세 등 각종 불법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국세청은 박 회장이 가족이나 친지, 부하 직원 등이 대주주인 일종의 페이퍼컴퍼니(서류상의 회사)를 통해서 신원그룹의 경영권을 다시 장악했다고 보고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세월호 사고와 관련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법정관리로 잃게 됐던 경영권을 편법을 동원해 사실상 되찾았던 것과 유사한 사례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박 회장에 대한 국세청의 고발에 대해 강도 높은 수사를 예고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신원그룹 경영권을 되찾는 과정에서 정관계나 금융계 등에 대한 광범위한 로비가 있었는지 등에 대해서도 살펴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단 1주도 없지만, 경영권 휘두르는 회장

박성철 회장은 신원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신원의 주식을 단 한 주도 갖고 있지 않다. 지난 1999년 ㈜신원이 워크아웃에 들어갈 때 보유하고 있던 주식(16.77%)을 회사에 무상으로 증여하면서 지분을 모두 포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3년 워크아웃 졸업 이후 줄곧 대표이사 등으로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다.

현재 ㈜신원의 1대 주주는 '티엔엠커뮤니케이션즈(이하 티엔엠)'라는 광고대행사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광고 영화 및 비디오물 제작업'으로 등록해 놓은 이 회사가 28.38%(2014년 말 기준)의 지분을 갖고 있다. 박 회장이 아니라 이 회사가 신원의 경영권을 행사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이 회사 1대 주주(26.6%)의 이름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바로 박 회장의 부인 송모씨다. 그래서 국세청은 이 회사를 박 회장이 편법으로 회사를 소유하기 위해 만든 페이퍼컴퍼니라고 보는 것이다. ㈜신원이나 티엔엠의 주식을 단 한 주도 갖고 있지 않은 박 회장이 신원그룹 회장으로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는 비밀은 바로 이런 편법을 동원했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신원그룹은 워크아웃을 통해 부채 탕감 등의 혜택을 받아서 회생했는데, 부실 경영의 책임이 있는 사람이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경영권을 다시 쥐게 된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워크아웃 기간에 설립한 회사로 경영권 장악

티엔엠은 ㈜신원이 워크아웃(1999~2003년) 중이던 2001년에 자본금 4억원의 광고대행사로 출발했다. 별 실적도 없이 2년 정도를 보낸 이 회사가 2003년 워크아웃 졸업을 앞둔 ㈜신원의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당시 채권단은 워크아웃을 위해 대출금을 출자 전환해 억지로 보유하게 된 신원의 지분을 되파는 것이 급선무였다. 이 때 티엔엠이 등장한 것이다. 신원의 주채권 은행이었던 외환은행 등으로부터 60억원을 대출받아 ㈜신원 주식 45만주(6.83%)를 사들인 것을 시작으로 차입금을 늘려가면서 지분율을 높였다. 2003년 6%대였던 지분율은 작년 말 기준 28%를 넘어섰다.

2013년 말 기준으로 자본금이 77억원에 불과한 티엔엠은 비상장 기업이라 구체적인 지분 구조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검찰과 국세청 등에 따르면, 박 회장의 부인 송모씨가 지분 26.6%(2013년 말 기준)를 갖고 있고, 박 회장의 세 아들도 각각 1% 정도씩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등록된 종업원 수는 총 4명으로 박 회장의 세 아들과 대표이사로 등재된 정모씨가 전부다. 이들에게 보수 명목으로 2012년 8400만원, 2013년 6900만원을 지출한 것 외에 자금 집행이나 영업 활동 등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신원 주식을 사들이기 위해 금융권에서 빌린 단기차입금은 120억원에 달한다. 티엔엠의 작년 말 기준 자산은 200억원 정도인데, 신원의 지분 가치가 199억원으로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은 국세청의 검찰 고발 등 조치에 대해 "(국세청이 문제 삼고 있지만) 티엔엠은 원래부터 지주회사 성격의 회사로 만들려고 했다는 점을 감안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