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출장 간다고 보고한 뒤 출근을 하지 않다가 적발된 세종시 한 간부급 공무원이 논란이 됐다. 그런데 조사 결과, 이 공무원은 작년 11월 이후 근무일수 130일 동안 출근한 날이 20여일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나마 5일은 교육 때문에 출근했다고 한다. 실제 근무를 위해 출근한 건 15일밖에 안 됐던 것이다.

문제가 된 사람은 기획재정부 감사담당관실 A씨다. 그는 서울 출장을 가겠다고 보고한 뒤 서울과 세종시 어디에도 출근하지 않다가 지난달 한 직원의 제보로 적발됐다. 21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산하기관 등의 감사 업무를 맡고 있는 그는 출장 보고가 용이하다는 점을 이용해 출장을 구실삼아 출근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식으로 작년 11월 이후 최근까지 20여일밖에 출근하지 않았다고 기재부 관계자는 말했다. 이 관계자는 “감사 업무 특성상 관할하는 상관 없이 장관에게 직보하는 자리다 보니 그의 근태를 제대로 관리하는 사람도 없었던 것 같다”고 했다.

작년 5월 정부세종청사 국무총리실 복도를 직원들이 걷고 있다.

그가 원래 불성실했던 것은 아니었다고 주변 동료들은 말했다. 하지만 민간 진출이 어려워지면서 돌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있던 자리는 주로 비(非)고시 출신이 정년을 앞두고 민간 진출 전에 거쳐가는 보직이다. 은행연합회 감사 등으로 나가는 자리다. 그런데 지난해 세월호 참사가 터진 이후 ‘관피아’(관료와 마피아의 합성어) 논란이 거세지면서 그의 민간 진출에 제동이 걸렸다. 이후 낙담한 뒤 업무를 거의 보지 않았다는 게 주변 공무원들의 설명이다.

그는 사표를 냈지만 기획재정부는 사표를 수리하지 않고 중앙징계위원회에 중징계 의견으로 징계를 의뢰했다. 중징계가 확정되면 그는 공무원연금 등을 박탈당할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한 달 정도 후에 징계 수위가 확정될 전망”이라고 했다.

그는 조사 과정에서 “세종시에 없을 때는 국회나 감사원 등지에서 일을 봤고 빨리 퇴근한 적은 있지만 일을 안한 적은 없다”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관련 증거 기록을 제대로 제출하지 못해 중징계를 피하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정부세종청사 복도를 직원이 걷고 있다.

그의 사례가 논란이 되면서 세종시에는 근태 관리를 위한 각종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출장 횟수가 많은 상위 20% 공무원들은 출장 내역과 소명자료를 제출해야 했고, 오전 9시 출근·오후 6시 퇴근은 무조건 지켜야 하는 규칙이 됐다. 서울 회의나 약속 등이 있으면 세종시로 늦게 출근하거나 조금 빨리 퇴근해 서울로 가는 게 허용됐는데, 이제는 웬만하면 업무 시간에는 세종시에서 근무해야 하는 것이다.

회의가 길어지면 세종시로 복귀하지 않고, 서울 중앙청사 등에서 근무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퇴근 시간이 1~2시간 남더라도 세종시로 내려와 퇴근 기록을 남기는 경우가 대폭 늘었다. 점심도 오후 1시 전에는 무조건 마치고 돌아와 복귀 기록을 남기고 있다고 한다.

한 공무원은 “최근 업무상 중요한 약속이 서울에서 있었는데 6시 퇴근 시간을 지키느라 부리나케 뛰어 6시 10분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이후 버스를 내려 전력질주해 6시 30분에 출발하는 KTX를 탄 적이 있다”며 “양복과 구두 차림으로 힘들게 뛰면서 이게 뭐하는 짓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다른 공무원은 “서울에서 출퇴근을 하고 있는데 오후에 회의가 잡히는 날이면 서울에 올라갔다가 회의가 끝난 후 세종시로 내려와 퇴근 기록을 남기고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일이 자주 생긴다”며 “길에서 버리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고 푸념했다. 그래서 공무원들 사이에선 도덕적 해이 발생을 막으면서도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근태 관리 조항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