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를 연구하는 일본 역사학자 도리우미 유타카씨.

일본인 역사학자인 도리우미 유타카(鳥海豊·53·선문대 강사)의 전공은 일제(日帝)강점기의 한국 경제. "일제가 한국을 경제적으로 착취했다는 '식민지 수탈론'의 관점에서 최대한 실증적으로 연구한다"는 것이 그의 학문적 입장이다. 도리우미 박사는 "일본에서 '한국인'이나 '공산당'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두렵진 않다"면서 "일본이 식민 지배나 역사 왜곡을 했다면 그걸 고치는 것도 일본인이어야 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아시아 태평양 연구과에서 석사 과정을 밟은 그는 2013년 서울대 국사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논문 주제는 '일제하 일본인 청부업자의 활동과 이윤 창출'. 이 논문에서 그는 "일제의 근대화는 일본인 토목 청부업자의 이익을 위한 인프라 정비에 편중했으며, 이 때문에 필요 이상의 토목 공사를 추진했다"고 주장했다.

'인프라 정비 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사업 목적이 수탈이었기 때문에 문제'라는 학계의 기존 시각에서 한 걸음 나아가 일제의 인프라 공사 자체에 구조적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그는 "수의계약이나 철도국의 기술주임제도(현장 감독) 등을 통해 조선인 청부업자를 입찰에서 배제했으며, 조선인 근로자의 정당한 임금을 빼돌리는 방식으로 일본인 토목업자에게 이익을 안겼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조선에서 활동했던 일본인 토목업자들의 회고록이나 장부 등을 바탕으로 "1920~1930년대 조선총독부의 통계 연보에는 조선인 노동자의 일당(日當)이 1엔이었다고 적혀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30~40전만 지불하는 방식으로 일본인 토목업자들이 막대한 부당 이익을 챙겼다"고 말했다. 1928년부터 조선에서 토목공사를 했던 일본인 업자 마쓰오 시게루(松尾茂)는 '조선에 와서 처음 한 일이 조선인 노동자의 일당을 지불하는 일이었으며, 당시 하루 임금은 20~30전이었다'고 기록했다. 만주에서 철도 건설 공사를 하던 다른 토목업자는 '조선에서 철도 건설 공사를 하고 싶다. 현재 낙찰가의 절반으로도 이익을 낼 수 있다'고 썼다. 그만큼 토목공사를 통해 얻는 이익이 막대했다는 뜻이다.

국내 학계에서는 일제의 경제적 착취에 방점을 둔 '수탈론'과 식민지 시기의 경제성장에 주목한 '식민지 근대화론' 사이에 여전히 논쟁이 뜨겁다. 그는 수탈론의 입장에 서면서도 두 입장의 약점을 짚었다. "식민지 근대화론에 비하면 수탈론은 실증 연구가 취약하고, 식민지 근대화론은 별다른 의문 없이 조선총독부의 통계를 인용한다"는 것이다. 도리우미 박사는 "앞으로도 쌀 수탈과 금융 문제 등 일제강점기 경제 발전과 수탈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연구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