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울 수 있는 나라'가 되기로 결정한 일본이 '그럼 어떤 경우에 싸울 것인가'에 대한 조건을 정했다.

일본 정부는 17일 자위대를 해외에 파견하는 요건을 담은 정부안을 만들어, 연립 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에 제시했다고 마이니치 신문 등 일본 언론이 보도했다. 자민당과 공명당은 이날 나온 정부안에 이견을 달지 않아 정부안이 큰 틀에서 사실상 확정됐다.

정부안에 나타난 자위대 파병 요건은 세 가지다. 첫째, 일본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타국이 무력 공격을 받아 일본의 존립이 위협받고, 일본 국민의 권리가 뿌리째 흔들릴 명백한 위험이 있을 때, 둘째, 일본의 존립과 국민을 지키기 위해 무력 행사 외에 적당한 수단이 없을 때 파병하며, 셋째, 이 경우에도 필요 최소한도의 실력 행사에 그쳐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 세 가지 요건을 '존립 위기 무력 공격'이라고 규정하기로 했다.

이날 나온 정부안에는 또 후방에서 미군을 지원하는 것과 관련해 '동아시아와 그 주변에서 미·일 안보조약의 효과적 운용에 기여하는 목적에 한해' 자위대를 파견한다는 문구가 들어갔다고 요미우리 신문 등 일본 언론이 전했다. 한반도에서 유사시에 자위대가 미군을 후방 지원하되, 일본의 지원은 미·일 동맹과 한·미 동맹 틀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미·일 동맹뿐 아니라 한·미 동맹도 있기 때문에, 일본이 자위대 해외 파견이 가능하도록 안보법제를 바꿔도 한반도 비상사태 시 한국이 원치 않는데 자위대가 군사적 역할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연립여당 두 곳 중 공명당은 일본이 싸울 수 있는 나라가 된다 해도 '언제, 어떻게, 왜 싸우는지 명확한 조건을 정해둬야 한다'며 공동 여당인 자민당의 브레이크 역할을 해왔다. 이날 정부안에 '무력 행사 외에 적당한 수단이 없을 때'라는 요건이 들어간 것은 공명당의 주장이 반영된 것이다.

양당 사이에 아직 이견이 남은 부분은 자위대 파병 때 국회 승인을 어떤 식으로 구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자민당은 "사전 승인을 원칙으로 하되, 일단 정부가 자위대를 파견한 뒤 사후 승인을 얻는 것도 허용하자"는 입장이다. 반면 공명당은 "예외 없이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양당은 이 부분을 최종 조율 중이다. 마이니치는 "정부가 자위대를 보낸 뒤 다수당이 추인해주는 데 그친다면 법 자체가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2차대전 패전 후 '국제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무력을 행사하는 것을 영구히 포기한다'는 평화헌법을 만들었다. 자국이 공격당했을 때 방어할 수 있는 권리(개별적 자위권)만 보유하고, 일본 이외의 국가가 공격당했을 때 개입할 수 있는 권리(집단적 자위권)는 '보유는 하되 행사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작년 7월 이런 구도를 뒤엎었다. 각의(閣議·일본의 국무회의 격) 결정을 통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공식 인정한 것이다. 아베 정부는 이어 자위대 운용과 관련된 기존 안보법제를 정비하는 작업을 진행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