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대학교에서 신경학 박사 과정을 밟던 리사 제노바는 자신의 할머니가 알츠하이머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할머니의 마음을 상상하면서 글을 한 편 썼다. 그 소설이 바로 영화 '스틸 앨리스'(감독 리처드 글렛저·워시 웨스트모어랜드)의 원작이자 국내에는 '내 기억의 피아니시모'로 번역된 소설 '스틸 앨리스'다. 영화와 원작 소설은 큰 차이가 없다. 부족할 게 없는 미국 상류층 백인 여성이 알츠하이머병을 앓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 영화(소설)가 흥미로운 이유는 한 여성이 단순히 알츠하이머병에 걸렸다는 것에만 있지 않다. 영화 속 앨리스는 미국 명문 컬럼비아 대학교의 저명한 언어학 교수다. 소설은 앨리스를 하버드대학교 심리학 교수로 그린다. 여기서 학교와 학과는 중요하지 않다. 강조돼야 할 부분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50대 여자가 매우 높은 수준의 지적 활동을 하던 인물이라는 점이다.

이쯤 설명하면 또 한 명의 인물이 떠오른다. 영국의 소설가이자 철학자 아이리스 머독(1918~1999)이다. 영국인의 사랑을 한몸에 받던 이 당대 최고의 지성도 알츠하이머에 걸렸다. 언어를 통한 지적 활동을 최고치로 끌어올렸던 머독이 병에 걸린 이후 유아용 TV 프로그램 '텔레토비'(언어라고 할 수 있는 말이 나오지 않는)를 멍하게 보는 시간이 많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래서 강하게 의심해 본다. 영화 '스틸 앨리스'는 원작 소설에 아이리스 머독의 일화를 잘 조합해 만들어진 영화는 아닐까. 우연일지는 몰라도 앨리스의 남편은 존이고, 머독의 남편도 존(존 베일리)이다.

앨리스 하울랜드(줄리언 무어)의 삶은 말 그대로 모든 면에서 '완벽'하다. 그는 언어학 교수로서 자신의 커리어를 충실히 쌓아 올렸다. 세 자식은 올바르게 컸고, 남편과의 사이도 좋다. 앨리스뿐만 아니라 이들 가족의 삶은 남부러울 게 없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다. 앨리스가 조발성 알츠하이머에 걸린 것이다. 완벽한 여자의 완벽한 일상은 조금씩 무너져 내린다. 소설 '스틸 앨리스'와 아이리스 머독의 실화가 영화의 뼈대라면 리처드 글렛저 감독 말년은 이 영화의 살과 근육이다. 글렛저 감독은 루게릭병을 앓다가 지난달 12일 숨졌다. 그는 온몸이 마비된 상태에서도 '스틸 앨리스' 연출을 놓지 않았다. 죽음이 엄습해 오는 순간까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던, 삶을 향한 그의 숭고가 영화에 담겼다. 앨리스도 '여전히 앨리스(still Alice)'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인간이다. 삶에 대한 글랫저의 바로 그 태도가 곧 영화 '스틸 앨리스'를 연출하는 그의 태도다.

관객은 이미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인물이 주인공인 영화를 여러 편 봐왔다. 와타나베 켄이 주연한 '내일의 시간'(2006)이나 정우성·손예진 주연의 '내 머리 속의 지우개'(2004)가 있다. 최근 사례로 '장수상회'도 있다. 아픈 사람이 주인공인 영화가 매번 그렇듯 이 영화들도 병이 만드는 신파에 집중했다. 일반적으로 시한부 신파가 신체에 가해지는 물리적 고통으로 인한 것이었다면 알츠하이머 소재 영화의 신파는 '기억' 등 정신적인 것과 연결돼 있다는 점이 다르다면 다르다. '스틸 앨리스'가 앞서 같은 소재를 다룬 영화들과 구분되는 지점이다. 이 영화에는 '그 신파'가 없다.

물론 그들도 슬프다. 하지만 그들은 울지만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하면 '스틸 앨리스'는 악화하는 앨리스의 상태를 보며 눈물짓는 이들에게는 관심이 많지 않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지만, 이 영화가 보려 하는 건 앨리스다. 영화는 쉽게 자기 자신을 잃을 수 없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여자의 조용하지만 끈질긴 저항을 보여준다. 이 저항은 너무나 인간적이어서 아름답다. 때로 앨리스도 무너지지만, 대체로 앨리스는 최선을 다해 자신을 지켜낸다. 영화 '스틸 앨리스'가 눈물 없이 관객을 울리고야 마는 건 앨리스가 약해서가 아니라 앨리스가 강해서다. 그래서 '스틸 앨리스'에는 흔한 영화에서 볼 수 없는 품격이 있다.

리처드 글렛저, 워시 웨스트모어랜드 두 감독이 그들의 연출 의도를 영화에 정확히 관철할 수 있었던 건 역시 앨리스를 연기한 줄리언 무어의 연기력 덕분이다. 무어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이라는 수식어를 뛰어넘는 몰입을 보여준다. 알츠하이머를 단계별로 표현해내는 무어의 연기 테크닉은 그리 놀랄 만한 게 아니다. 그는 이 정도 연기를 언제나 보여줬던 배우다. '스틸 앨리스'에서 무어의 연기가 뛰어난 건 한 인간을 이해하는 마음 그 자체다. 무어는 앨리스를 알기에, 풀어헤친 머리와 단정히 묶어 올린 헤어스타일만으로도 앨리스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

알렉 볼드윈, 크리스틴 스튜어트, 케이트 보스워스 등 조연들도 제 몫을 한다.

앨리스는 이제 읽을 수 없고, 말을 제대로 할 수도 없다. 앨리스는 이제 앨리스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런 그가 한 마디 내뱉는다. 이 말은 앨리스의 존재를 증명한다. 알츠하이머가 앨리스의 뇌를 마구 집어삼키고 있지만, 앨리스는 말한다. "사랑(love)." 그가 말하는 "사랑"은 무엇일까. 어떤 관객은 자신을 보살펴주는 가족을 향한 앨리스의 마음이라고 해석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의 '사랑'은 바로 앨리스 자신을 향한 사랑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