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윤 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

잃어버렸다고 생각하고 한참 찾던 휴대폰 같은 물건을 나중에 냉장고 안에서 찾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치매 노인을 다룰 때 흔히 나오는 소재 거리다. 실제로 같은 일을 겪은 주부들이 치매인지 걱정하며 진료실에 오곤 한다. 이런 일이 워낙 잦다 보니 엉뚱한 물건이 냉장고 안에서 발견되는 것을 '냉장고 증상'이라고도 한다. 냉장고 증상 환자들을 자세히 관찰하면 치매는 아니지만, 스트레스와 우울증으로 집중력 장애가 있었다. 그로 인한 건망증 증세가 나타나는 것이다.

사실 건망증이라는 말에 대한 의학적 정의나 기준은 없다. 신경과 전문의들이 말하는 건망증은 '뇌 병변이나 질환이 없이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기억력 감소'를 의미한다. 이와 구별되는 증상이 기억장애인데, 알츠하이머병과 같은 뇌 질환에서 나타난다. 하지만 초기 기억장애와 건망증은 전문의가 볼 때도 구별하기 쉽지 않을 때가 있다.

건망증은 많은 경우 스트레스·우울증 등과 함께 나타나거나 분노·불안·초조감이 동반되는 상황에서 심해진다. 과도한 업무나 육체적 피로도 원인이다. 건망증 형태는 두 가지다. 첫째는 어떤 사실에 대한 기억이 머릿속으로 들어가 저장이 되기는 하는데, 이를 적절히 생각해 내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힌트를 주거나 비슷한 상황에 놓이게 하면 쉽게 기억을 떠올릴 수 있다. 대다수의 건망증이 이렇다. 둘째는 어떤 일을 하면서 딴생각으로 꽉 차 있어서 진행되고 있는 일에 대해 관심을 갖지 못해 발생하는 건망증이다. 이 경우도 집중시켜 놓고 다시 말해주면 잘 기억한다.

이에 반해 알츠하이머병에 의한 기억장애는 있었던 사실이나 내용이 머릿속으로 입력이 안 되는 것이다. 기억 자체가 없기 때문에 아무리 힌트를 주어도 기억해 내지 못한다. 간혹 알츠하이머병으로 조금 전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노인에게 당시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기억해 내기를 재촉하는 보호자들이 있는데, 환자에게 심한 스트레스만 줄 수 있다. 알츠하이머병이 아닌 다른 뇌 질환으로 인한 기억장애 초기에는 회상이 잘 안 되는 건망증과 비슷한 증상이 나올 수 있어 수개월에 거쳐 지켜봐야 구별이 될 때도 있다.

나이가 들면 사람 이름이 잘 생각이 안 나고, 젊었을 때보다 기억력이 줄고, 가끔 날짜를 모르겠다는 증상을 가질 수 있다. 이 세 가지 증상만 있고 일상생활을 그런대로 잘한다면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소지품을 잃어버리거나, 약속을 깜박 잊어버린다든지, 물건을 사러 가서 몇 가지를 빼놓고 오는 경우 등은 일반적인 노화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 다만 심한 건망증이나 기억장애로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지장이 있거나, 본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내용도 잊어버린다면 진료를 받아봐야 한다.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기억장애를 자주 걱정한다면, 검사를 받아봐야 할 시점이라고 받아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