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미국 국제정치학자들 사이에서는 한국을 스윙 스테이트(Swing State·강대국들 상대의 외교에서 동요하는 국가)로 보는 이가 적지 않다. 동북아에서 급격하게 세력전이 일어나는 가운데 한국을 미국과 중국 사이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나라로 보는 것이다.

다른 나라들은 미국과 중국이 양대 강국이라는 의미의 G2라는 표현을 거의 쓰지 않는데 한국에서는 일상화돼 있다. 미국은 아직 중국이 자기와 동등한 경쟁자가 아니라서 G2라 부르지 않는다. 중국은 미국처럼 국제사회의 관리를 책임질 능력이나 의향이 없어서 이 표현을 삼간다. 일본은 자기네가 들어 있지 않은 표현이니 쓰지 않는다. 유독 한국만 G2라고 부르며 중국을 마음속에서 미국 다음가는 나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국만큼 중국에 투자와 교역을 늘리고 있는 나라도 드물다. 한국 전체 수출의 25%가 중국을 향하고 있다. 미국보다 더 큰 액수를 중국에 투자하는 것도 한국이다. 미국 다음으로 한국 유학생이 선택하는 나라도 중국이다.

한국이 스윙 스테이트로 여겨지는 진짜 이유는 다른 데에 있다. 동맹국인 미국과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지만, 일본과는 척을 지고 과거사로 날 선 공방을 벌이고 있다. 중국에 대한 우호적 자세와 대비된다. 혐한류에 젖어가고 있는 일본인들 마음속에는 한국이 중국 편이 돼가고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심지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공유한다는 기본적 사실마저 애써 눈감으려 한다. 한·일 간 날 선 공방을 지켜보는 중국은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재발견하고 적극적으로 한국을 끌어당기려 하고 있다. 일본은 미국 품 안에서 벗어나지 않겠지만 한국은 끌어당기면 중국에 다가갈 것 같기 때문이다. 중국 입장에서 보면 역사 인식 공방은 일본에 대항해 한국을 묶어두는 데 적절한 이슈다.

한국 외교를 보면 스윙 스테이트에 대한 우려가 우격다짐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과 다섯 번 정상회담을 했지만, 아베와는 아직 한 번도 제대로 만나지 않았다. 일본과의 FTA는 10년 이상 미루면서 중국과는 협상 개시 3년도 안 돼 한·중 FTA를 체결했다. 중국과 방위협력을 늘려가면서도 일본과의 방위협력에는 미온적이다. 최근 미국과 일본이 꺼리는 AIIB에 한국이 가입을 선언했다.

한국의 외교 자세를 보면서 일본은 미국에 대해 자기네야말로 동맹의 적자라고 어필하고 있다. 미 중심의 TPP 협상에 적극적이고, 집단적 자위권을 통해 아태지역에서 미군 활동을 돕고, 적극적 평화주의를 내세워 국제 안보·안정에 기여하는 자신들이야말로 미국의 진정한 친구라고 외친다. 그래서 아베 총리는 미 상하 양원 합동연설을 손에 넣었다.

동아시아 세력 전환기에 한국은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좀 더 치열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한국이 미·중 두 나라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상황이라는 외교부의 인식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위기의식이 결여돼 있다. 러브콜을 쌍방에서 받는다면 언젠가는 양쪽으로부터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솜씨 좋게 그네뛰기를 하는 스윙 스테이트가 되면 좋겠지만, 중심 없이 왔다 갔다 하다가는 양쪽 모두에서 신뢰를 상실하는 상황도 맞을 수 있다. 한국 외교의 닻이 어디에 놓여 있어야 하는지 정확한 전략적 판단이 없는 동요는 선택의 회피나 연기에 불과하다.

중국과 우호 친선관계는 돈독히 해야 하지만, 북한 위협이 상존하는 상태에서 미국과 일본은 우리 안보의 버팀목이다. 일본과 관계 개선이 없이는 한·미 관계에도 손상이 갈 수 있다는 깊은 혜안이 있어야 한다. 다양한 채널의 솔직한 대화를 통해 한·일 간 과거사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서로의 노력이 배가돼야 할 때다. 일본도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을 저버린다면 민주국가 연대의 연결고리에 서려는 전략이 절반의 성공에 그칠 것이고, 아베 외교도 지구본 반쪽만 바라보는 외교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