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국노총의 '노사정(勞使政) 협상 결렬 선언'으로 사실상 무산된 노동시장 구조 개선 방안을 독자 추진하기로 했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 같은 입장을 밝혔다. 이 장관은 "비록 최종적으로 노사정 대타협에 이르지 못했지만 작년 12월부터 석 달 넘게 진행된 논의 과정에서 노사정이 공감대를 이뤄낸 부분도 많다"면서 "공감대가 형성된 과제를 중심으로 노동시장 구조 개선을 (독자적으로) 계속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노사정 공감대 이룬 과제 우선 추진

정부는 노사정이 공감대를 이룬 과제를 우선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중에서도 법 개정이 필요한 통상임금의 범위와 근로시간 단축이 가장 시급하다. 노사정은 논의 과정에서 통상임금 범위와 관련해 대법원 판결을 토대로 명확한 기준을 입법화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주당 근로시간은 최대 52시간으로 단계적으로 단축하되, 예외적으로 4년 동안만 주당 8시간의 추가 근로를 허용하자는 데 공감했다고 고용부는 밝혔다. 정부는 이를 반영해 이달 임시국회에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낼 계획이다.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는 방안으로는 오는 6월까지 실업급여의 지급 기간과 대상, 액수를 확대하는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최저임금도 소득분배 개선에 기여할 수 있도록 중장기적인 목표를 설정해 단계적으로 인상하기로 했다.

청년 고용을 활성화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상위 10% 이내 고소득 근로자들이 자율적으로 임금 인상을 자제하고 정부는 청년 채용 장려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기간제 계약 기간의 연장(2년→4년), 파견 허용 업종의 확대 등 노사정이 논의 과정에서 나중에 논의하기로 한 과제는 현장 실태 조사를 거쳐 9월 정기국회 전까지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 장관은 "이를 위해 노사정위와 별도로 청년·비정규직 근로자 등 당사자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협의체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계와 끝내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한 일반 해고 요건, 취업 규칙 변경 요건과 관련해서는 전문가·노사단체의 의견을 수렴해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는 해고를 쉽게 하고 근로조건을 악화시키자는 게 아니라 그 기준과 절차를 명확하게 해 노사 간 분쟁을 줄이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국회에서 진통 예상

통상임금과 근로시간 단축의 입법 과정에서도 진통이 예상된다. 노동계와 야당이 힘을 모아 저지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이기권 장관은 "통상임금과 근로시간 단축 등 현안은 작년에도 국회 환경노동위 소위에서 상당 부분 논의가 이뤄졌고 국회도 이번에는 노사정이 공감을 이룬 점을 고려해 줄 것이라 생각한다"며 "노동계도 서로 공감을 이룬 내용에 대해선 반대 투쟁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노동계 관계자는 "국회로 공이 넘어가면 한국노총뿐만 아니라 민주노총과 야당도 논의에 참여하기 때문에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일반 해고 요건, 취업 규칙 변경 요건을 법이 아닌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하는 것도 오히려 이를 둘러싼 소송을 늘릴 수도 있다.

이 같은 정부 입장에 대해 한국노총은 "노사정이 당초 일괄 타결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일부라도 합의 못 했으면 전체가 결렬된 것"이라며 "정부가 해고 요건 완화 등 노동 조건을 개악하는 방안을 강행 처리할 경우 강력한 투쟁으로 저지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