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환 공간' 에서 이우환 화백이 작품을 직접 배치하고 있다.

8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우동 부산시립미술관 앞뜰. 전면은 유리로, 나머지는 모두 콘크리트로 된 직육면체의 2층짜리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군더더기 빼고 있어야 할 것만 있는 간결한 모습이다. 10일 문을 여는 '이우환 공간(Space Lee Ufan)'이다. 거장 이우환 화백의 이름을 건 국내 유일의 미술관이다. 2010년 개관한 일본 나오시마(直島)의 이우환 미술관에 이어 작가의 이름을 단 세계 두 번째 미술관이다.

개관식을 이틀 앞둔 이날 현관 뒤 벽면에 테라코타 작품 설치 작업을 지휘하던 이우환(79) 화백은 개관 소감에 대해 "기쁘고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그림 없이 거대한 캔버스만으로 이뤄진 작품 '물(物)과 언어', 깨진 유리 위에 큰 돌이 놓인 '관계항-지각과 현상' 등 1층엔 8개의 작품이 전시된다. 1층 왼쪽 끝에서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연결됐다. 점과 선을 이용한 독특한 화풍으로 유명한 '점' '선' '바람' '대화' 등 1970년대 이후 최근까지 그려진 회화 작품 10여 점이 전시되고 있다.

'이우환 공간'의 건물은 부산시가 47억여원을 들여 지하 1층·지상 2층(연면적 1400.83m²) 규모로 지었다. 시립미술관 옆에 세워져 그 별관 격이다. 건물과 내부 인테리어, 사무 집기와 가구, 작품 배치 등의 설계 내용, 디자인은 모두 이 화백이 직접 정했다. 건물과 콘텐츠 전체가 그의 작품인 셈이다. 이 화백은 "이 공간은 건축적 측면이 중심인 일본 나오시마의 미술관과 많이 다르다"며 "작품 전시와 건축이 서로 어울리면서 상호 연관을 중요시한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건물이 들어선 자리는 공중화장실이 있던 곳. 그리고 주변이 고가도로와 고층 빌딩들로 둘러싸여 있다. 조일상 부산시립미술관장은 "이 화백이 구석진 장소였던 이곳을 문화가 생동하는 공간으로 재창조,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었다"며 "작은 별관으로 커다란 독립 미술관보다 오래가고 운영에 어려움이 적다는 현실적 여건까지 감안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림, 설치미술 등 모두 20여 점의 작품이 전시된다. 작품 값은 200억원에 가까운 것으로 전해졌다.

10일 개관하는 부산 해운대구 우동 부산시립미술관 앞뜰에 자리한‘이우환 공간’전경. 세계적 거장인 이 화백의 작품만을 위한 이 전시관은 부산시가 47억원을 들여 지하 1층·지상 2층 규모로 지었다.

'이우환 공간'은 조일상 부산시립미술관장 등 부산 측 제안에 따라 이뤄진 것. 부산은 대구 등 국내 여러 도시와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2011년부터 2년 6개월여에 걸친 노력 끝에 '전시관 유치'란 결실을 일궈냈다. 조 관장은 "처음엔 '개인 미술관 건립이 부담스럽다'며 모든 제의를 사양하던 이 화백이 미술관 건립에 대한 진정성, 부산과의 인연 등을 소중히 여겨 우리의 간청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부산보다 4~5배 큰 규모로 계획됐던 대구 '이우환과 그 친구들' 미술관의 경우 무산됐다.

이 화백은 경남 함안 출신으로 부산 경남중을 나와 서울대 회화과를 다니다 1956년 일본으로 유학, 일본 전위 예술운동인 '모노하(物派)'를 주도한 인물. 파리 퐁피두센터, 베를린 국립미술관 등 주요 미술관에서 개인·그룹전을 열었다. 2011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회고전 '이우환: 무한의 제시'를, 지난해 베르사유 궁전에서 대규모 조각전시회도 개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