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는 "북한에 의해 발생한 부정적인 역사적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역사적 진실인 만큼 이를 솔직하고 정확하게 학생들에게 전달해야 한다"며 "그래야 진정으로 대립·갈등을 넘어 화해·평화로 나아가는 것이 가능해진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주체사상·조선민족제일주의·자주노선 등에 대해 북한이 내세우는 주장을 그대로 실은 교과서에 대해서도 "이런 주장이 어떤 맥락을 가지는지 이해하기 어려우므로 서술을 보강하고 수정하라는 교육부의 명령은 적절하다"고 밝혔다. 박정희 정부의 경제개발 정책을 설명하면서 '지나친 외자 도입으로 인한 상환 부담은 국가 경제에 큰 부담을 줬고, 1997년 말 외환 위기가 일어나는 한 원인이 됐다'고 쓴 금성출판사에 대해선 "박정희 정부의 존재와 외환 위기 사이의 간격이 18년이나 되고 그 사이에 다른 정부가 세 번이나 존재했다"며 "경제학계에서 통설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인과관계가 부족한 서술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학생들은 이미 수정된 교과서로 공부

이날 법원이 적법하다고 판결한 교육부의 교과서 수정 명령은 지난 2013년 11월 교육부가 8종의 한국사 교과서 저자들에게 행한 명령이다. 그해 8월 고등학교 새 한국사 교과서 8종이 정부의 검정 심사를 통과한 뒤 '한국사 교과서 논쟁'이 벌어졌다. 당시 교과서 논쟁의 시작은 정부의 심사를 통과한 교과서 8종 중 보수 학자들이 집필한 교학사 출판사의 교과서가 일부 학자와 시민단체로부터 '극우 교과서' '오류 교과서'라는 비판을 받으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나머지 7종의 교과서에 대해서도 좌편향 논란과 오류가 지적되면서 순식간에 '한국사 교과서 논쟁'이 촉발됐다.

이에 따라 교육부는 교학사를 포함한 전체 8종 한국사 교과서를 재검토해 8종 교과서 발행사에 총 829건을 수정·보완하라고 권고했다. 교육부는 이 가운데 제대로 수정된 788건은 승인했고, 교육부 권고대로 수정되지 않은 7종 교과서 41건에 대해 2013년 11월 최종적으로 수정 명령을 내리면서 수정 명령을 받아들이지 않는 출판사 교과서는 발행을 정지하겠다고 통보했다. 그러자 교학사를 제외한 6개 출판사의 저자들은 "교육부가 수정의 정도를 넘어서 특정 사관을 강요하는 수준으로 내용 자체를 변경하라고 요구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저자들은 2013년 소송을 내면서 '수정 명령 집행정지' 신청도 냈지만 법원이 이를 기각했기 때문에 출판사들은 일단 교육부 명령대로 교과서를 수정해 학생들에게 배포했다. 이 때문에 학생들은 이미 수정된 교과서로 공부하고 있으며, 이번 판결로 교과서 내용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한국사 교과서 논쟁 이후 정부와 국회는 오류 없고 균형 잡힌 한국사 교과서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며 교과서 발행 체제 개선안을 만들기로 했다. 현행 한국사 교과서는 출판사가 만들어 정부의 검정 심사를 받는 형식인데, 정부가 책임지고 발행하는 '국정 체제'로 전환할지, 현행 검정 체제를 유지할지 등을 결정하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