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와 에로의 차이를 묻는 질문에 인터넷에는 이런 답이 올라와 있다. “에로는 오로지 응응을 하기위한 내용 전개이고, 멜로는 드라마적인 내용을 이끌어가다 응응이 들어간 내용의 영화.” 요즘 표현으로 ‘고급지다’ 말할 순 없지만, 어느 정도 핵심을 짚었다. 행위에 몰두하는 것, 때로 행위가 매개가 되어 더 높은 단계의 관계로 발전하는 것이 에로와 멜로의 차이가 될 것이다.

고강도 '시정 정국'이다. 포스코, 중앙대, 경남기업에 대한 수색현장에 어김없이 나타난 '파란 박스'. 과연 얼마나 '알짜'가 들었을까.

이런 기준으로, 요즘 사정(司正) 정국은 멜로일까, 에로일까.
포스코, 동국제강, 경남기업, 일광공영, 박범훈 전 청와대 수석의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린다. 다들 '나쁜 짓'을 했다고 한다. 이중 상당수가 이명박 정권에서 '혜택'을 본 기업이나 사람으로 꼽힌다. 여론 앞에 서는 순간, 모든 죄는 그저 다 '죽을 죄'다. 바늘을 훔쳐도, 양을 훔쳐도, 소를 훔쳐도 그냥 다 '죽을 죄'다. '저 놈을 쳐 죽여라' 소리치는 것은 비용이 들지 않으면서도 쾌감을 주는 일이다.

국민들은 ‘압수수색’ ‘비자금 확인’ ‘압력 행사’ ‘특혜 제공’ 같은 말에 흥분하고, 점점 더 ‘더 센 걸로!’를 요구한다. 검찰이야말로 그런 기대감을 제대로 알고 있는 조직이다. 여론을 등에 업은 수사에서 기소 때에는 산더미 같았던 죄목이 정식 재판에서 물거품처럼 녹아버린 게 어디 한 두 번인가. 그래도 검찰은 오늘도 정보를 슬쩍 흘리기도 하고, 공개적으로 발표도 하면서 국민들 귀에 대고 속삭인다. “오늘 것은 좀 더 쎈 거야!” ‘사정(司正)에로극’은 오늘도 지면을 장식한다.

문제는 우리의 행정력과 사법권을 어느 정도 ‘투자’하는가이다. 시쳇말로, ‘가성비’, ‘가격 대비 성능’으로 문제를 살펴야 한다. 국무총리가 나서 “부정부패를 발본색원하겠다’고 했고, 대통령은 “비리를 움켜쥐고 있는 뿌리를… 국무총리는 흔들리지 말고 추진하라”고 했다. 국가의 넘버1, 넘버2 가 이렇게 관심을 가졌으니 당연히 수사팀은 ‘역대급’으로 꾸려졌을 것이다.

아직 수사가 끝난 건 아니지만, 대단히 ‘큰 소리’를 낸 것 치고는 나오는 성과가 좀 허무한 게 아닌가 싶은 게 문제다. 국방비리 문제야 언제 다그쳐도 다그쳤어야 할 일이지만 나머지 기업과 관련해서 우리는 어떤 ‘혜택’ ‘성과’를 얻게 될까? 식의 큰 범죄를 저지른 기업을 밝혀냈거나 밝혀낼까?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수사받는 기업의 경우도, 대체 그 돈을 어디 썼는지 밝혀냈던가? 전 청와대 수석의 비리라는 것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A 대학 출신의 문화계 장악’ ‘검찰에서 B 라인 약진’ 같은 일보다 더 악질적인가? 구조적 비리를 들추고 혁파하기 보다는 그저 구질구질한 개인비리의 나열같다. 작위적 사정 행위가 지루해진다. ‘행위’만 있는 에로물이 그렇듯 말이다.

국민들이 정부의 ‘사정 드라이브’에 박수를 보낸 것은 이를 계기로 그릇된 ‘관행’이 사라지고 참신한 사회구조가 탄생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투자하고 노력한만큼 돌려받는 사회, 원칙이 지켜지는 나라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으리란 믿음 때문일 것이다.

지금의 사정 정국은 ‘과거 정부와 연애했던 너의 부정부패’에 대한 심판처럼 보인다. “봐라 잘못 걸리면 저 꼴난다”는 수군거림 외에 건질 게 없다. 이럴바엔 차라리 그 채찍을 돌려 ‘나의 부정부패의 가능성’을 살펴보길 권한다. ‘사정(司正) 포르노’ 보다는 ‘사정 멜로’가 좀 더 나을 것 같다.

박은주 디지털뉴스본부 부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