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첫 국산 기본 훈련기 KT-1 3대가 성남 서울공항 상공에 나타났다. 사흘 뒤 명명식을 치를 행사장에서 마지막 시범 비행을 연습하기 위해서였다. 기체를 뒤집어 배면(背面) 비행을 하던 1번기에서 '펑' 소리와 함께 조종석이 유리창을 깨고 튀어나왔다. 이내 다른 조종석도 튕겨 나왔고 KT-1은 비행장에 떨어졌다. 다행히 조종사들은 무사했다.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를 코앞에 두고 추락했으니 관계자들은 "사업이 죽을지 모른다"며 사색이 됐다.

▶튀어나온 조종석은 세계시장 70%를 차지하는 영국 마틴베이커사 제품이었다. 그래서 조종사가 사출(射出) 손잡이를 잘못 당겼을지 모른다는 얘기가 나왔다. 사고 원인은 뜻밖에 쉽게 나왔다. 사출 좌석 작동 핀이 느슨하게 꽂혀 비행기가 뒤집히면 빠지게 돼 있었다. 마틴베이커사도 잘못을 인정하고 배상에 합의했다. 엽기적 추락 사고로 좌초할 뻔했던 KT-1 사업은 잘 진척돼 77대를 수출했다.

▶KT-1은 프로펠러기이지만 첫 국산 고등 훈련기 T-50은 제트 엔진 초음속기다. KT-1이 초등학생이라면 T-50은 중학생쯤이다. 2001년에 나온 T-50은 부품 32만개, 내부 전선 길이 15㎞에 이른다. 부품을 깎고 다듬을 때 허용되는 오차가 1만분의 1~1000분의 2인치(0.005㎝)에 불과하다. 첨단 기술과 정밀 가공의 결정체라 할 만하다. 제작사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T-50을 개량해 미사일·폭탄 4.5t을 장착할 수 있는 경(輕)공격기 FA-50도 개발했다.

▶방위사업청이 그제 한국형 전투기(KFX) 사업 우선 협상 대상자로 KAI를 선정했다. 최초의 본격적 국산 전투기 사업이다. '국산 전투기'라는 이름은 80년대 '제공호' 때부터 따라붙었다. 실상은 미국 F-5E/F 부품을 들여와 조립한 것이었다. 무늬만 국산 전투기였던 셈이다. 반면 KFX는 고난도 부품 몇을 제외한 부품·무기에 우리 것을 써 F-16보다 나은 전투기를 만들겠다는 목표다.

▶첨단 전투기 개발에는 엄청난 돈과 시간이 들고 실패할 위험도 크다. 세계적 방산 수출국 이스라엘도 전투기 '라비'를 개발하다 포기한 적이 있다. 한국형 전투기는 개발비만 8조6700억원이 들고 120대 양산 비용까지 합치면 20조원 넘는 최대 무기 사업이다. 리스크를 줄이려고 록히드마틴 같은 해외 업체 기술을 지원받고 인도네시아와 함께 개발해 최소한의 시장도 확보하겠다고 한다. 10년 뒤 한국형 전투기가 완성돼 진정한 국산 전투기 시대를 열며 높이 날기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