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용원 군사전문기자·논설위원

"1980년대에는 이 땅에 미군이 한 사람도 없다고 가정하고 합참은 독자적인 군사 전략 및 전력 증강 계획을 발전시키도록 하라!"

1973년 4월 '을지연습 73' 순시를 위해 국방부를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은 합참으로부터 '국방지휘체계와 군사전략'을 보고받은 뒤 이 같은 지시를 내렸다. 당시 박 대통령은 "자주국방을 위한 군사 전략을 수립하고 군사력 건설에 참여하라" "중화학공업 발전에 따라 고성능 전투기와 미사일 등을 제외한 소요 무기 및 장비를 국산화해야 한다"는 등의 지시도 함께 내렸다.

약 1년 뒤인 1974년 2월 합참은 서울 홍릉 국방과학연구소에서 '군(軍) 전력 증강 8개년 계획'(1974~1981)을 박 대통령에게 보고해 재가를 받았다. 창군 이래 최초의 자주적이고 체계적인 전력 증강 계획이었다. 이 비밀계획은 임진왜란 때 10만 양병론을 주장했던 율곡 이이 선생의 이름을 따 '율곡사업'이라는 위장 명칭이 붙었다. 박 대통령이 이런 지시를 내리고 군에서 다급하게 전력 증강 계획을 수립한 것은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반 사이 1·21 청와대 기습 사건 등 북한의 고강도 도발과 닉슨 독트린, 주한 미 7사단 철수 등 안보 위기가 큰 영향을 끼쳤다. 율곡사업은 1993년 대대적인 '율곡비리' 감사 및 수사로 도마 위에 올라 명칭이 '방위력 개선 사업'으로 바뀐 뒤 몇 차례 포장을 바꿔가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율곡사업이 처음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군 전력 증강에 투입된 돈은 모두 얼마나 될까? 전문가들은 1974년부터 2011년까지 37년간 군 전력 증강 사업에 총 121조원이 투입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 뒤에도 매년 10조원 안팎의 돈이 무기 도입 및 장비 유지에 사용되고 있다. 보통 사람들은 피부에 잘 와 닿지도 않는 천문학적인 돈이다. 국방부는 올해 초 발간된 2014년 국방백서 등을 통해 우리가 아직도 핵·미사일 등 비대칭 전력은 물론 재래식 전력에서도 북한에 비해 상당한 열세라고 강조하면서 국방비 증액 필요성을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국방부와 군은 이제 평범한 국민의 시각도 겸허하게 살펴볼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많은 국민은 "그동안 그렇게 많은 돈을 쏟아붓고 북한보다 최소한 몇 배의 국방비를 쓰면서 아직도 북한군보다 열세이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전전긍긍하는가"라며 불신감과 의구심을 갖게 된 듯하다. 더구나 26일 천안함 폭침 사건 5주기를 앞두고 전직 해군참모총장 두 명이 방위사업 비리로 구속되는 등 무기 도입 비리가 계속 드러나고 성추행 등 군 기강 사건이 잇따르면서 불신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앞으로 2~3년 내 군이 예산 부족으로 현상 유지에 급급하고 신무기 도입을 하기 어려운 한계 상황을 맞는다 하더라도 국민의 지원을 받기 어려울 것이다.

군이 이런 위기에 처하게 된 데엔 여러 원인이 있지만 지금 우리 군에 율곡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의 '헝그리 정신'과 절박감이 크게 부족하다는 것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다. 군이 한국 사회에서 '미운 오리 새끼'처럼 전락하는 비극적 상황을 막기 위해서라도 1970년대 자주국방과 방위산업을 시작할 때의 초심(初心)을 잃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