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나라 그림책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해외 출판 시장에서 호평받거나 상을 받는 경우도 많아졌다. 올해는 6권의 우리 그림책이 이탈리아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이 주관하는 라가치상 5개 전 부문에서 입상하는 쾌거를 거뒀다. 라가치상은 '그림책의 노벨상'이라는 세계적 권위의 상이다. 올해 수상작을 낸 작가들을 만나 그들의 그림책 이야기를 들어봤다.

'민들레는 민들레'의 김장성·오현경(왼쪽) 작가

김장성·오현경|민들레는 민들레(이야기꽃), 논픽션 부문

김장성(51)·오현경(38) 작가는 5년간의 작업 끝에 지난해 '민들레는 민들레'를 펴냈다. 김 작가는 시멘트로 만들어진 도로 중앙분리대에 핀 민들레를 보고 이 책을 구상했다. 그는 "어디에 피어도 민들레는 민들레이듯, '어떤 단점이 있든 나는 나'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며 "요즘은 아이, 어른 모두 자기 개성을 잃어가는데, 사람들이 자존감을 갖고 살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전했다. 오 작가는 이 책의 그림을 그리며 집에서 민들레를 직접 키우기도 했다. 오 작가는 "어디서든 작고 소박하지만 예쁜 꽃을 피우는 민들레의 느낌을 그대로 전하고자 했다"고 귀띔했다. 김 작가는 "그림책을 '(아이를 가르치고 계몽하는 용도의)어린이책'으로만 단정 짓는 우리 현실이 아쉽다"고 덧붙였다. "그림책은 그림을 해석할 여지가 풍부할수록 좋은 책이에요. 그림책은 독자가 읽고 이야기 나누고, 생각할수록 더 다양한 가능성을 갖게 되는 책입니다."

'떼루떼루' 펴낸 박연철 작가

박연철|떼루떼루(시공주니어), 뉴호라이즌 부문

박연철(45) 작가는 서른 즈음 늦게 그림을 시작했다. 그림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어 영국 킹스턴대학 온라인 교육 과정을 2년간 밟고, 어린이책 작가 교실도 수료했다. 지난 2007년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에서 '망태할아버지가 온다'로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에 선정되기도 했다. '떼루떼루'는 우리 전통 문화에 대한 애정이 담긴 책이다. 민속인형극인 '꼭두각시놀음'에서 이야기를 가져왔다. 이를 위해 경기도 안성의 남사당패 공연장을 직접 찾기도 했다. 작품에 담긴 목각인형을 만드는 데만 1년 넘게 걸렸다. 박 작가는 "입체적 인형극을 평면에 나타내야 했기 때문에 목각인형을 쓰기로 했다"며 "이야기에 가장 잘 어울리는 기법과 소재를 찾아 작품을 기획하는 과정이 즐겁다"고 설명했다. "전통을 고리타분한 것 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오랜 시간 살아남은 '고전'에는 강한 생명력과 힘, 교훈이 있어요. 그걸 이 책으로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 싶었어요."

'세상에서 가장 큰 케이크'를 쓴 안영은 작가

안영은·김성희|세상에서 가장 큰 케이크(주니어김영사), 북앤시즈 부문

'세상에서 가장 큰 케이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책이다. 다빈치가 스포르차 공작과 베아트리체의 결혼식장을 커다란 케이크로 만들고자 했던 실화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케이크'를 중심으로 건축, 수학, 요리, 역사, 인물 등 다양한 이야기가 그림책 안에 어우러졌다. 안영은(46) 작가는 "제가 '먹보'인데, 다빈치도 요리와 음식 먹는 것을 좋아해 여러 가지를 발명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며 "아이들에게도 다빈치가 천재여서 다양한 발명품을 만든 게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 위대한 발명가가 되었다는 점을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또 이 책은 얼핏 보면 수학 동화로 착각할 만큼 연산식 등 수학적 내용이 많이 들었다. 그러나 안 작가는 "이 책으로 수학을 가르치는 데 골몰하지 마라"고 조언했다. "아이에게 좋아하는 음식을 묻고, 책 내용처럼 그 음식으로 어떤 건물을 짓고 싶은지 물어보세요. 수학 교육보다 그림책을 소재로 한 '대화'에 집중하세요."

'나의 작은 인형 상자' 펴낸 정유미 작가

정유미|나의 작은 인형 상자(컬쳐플랫폼), 픽션 부문

정유미(34) 작가는 2년 연속 라가치상 수상자 명단에 올라 주목 받았다. 지난해에는 '먼지아이'로 뉴호라이즌 부문 대상을 받았다.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애니메이션 연출을 전공했다. '나의 작은 인형 상자'는 동명 애니메이션을 그림책으로 출간한 것이다. 한 소녀가 인형 상자 안을 여행하며 4명의 캐릭터를 만나는 이 작품에는 작가의 어린 시절이 담겼다. "인형 상자는 소녀의 마음을, 슬픔, 두려움 등을 가진 4명의 캐릭터는 소녀의 다양한 모습을 상징하죠. 소녀가 이 여행을 통해 자기 내면을 깊이 이해하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간다는 이야기예요." 흑백의 연필화로 그려져 작품 주제와 배경 등이 잘 전달되고, 독자의 감수성을 자극한다. 정 작가는 "사람이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기란 쉽지 않다"며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자기 감정을 잘 이해하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위를 봐요'의 정진호 작가

정진호|위를 봐요(은나팔), 오페라프리마 부문

정진호(28) 작가는 전공인 '건축'과 취미생활이었던 '그림 그리기'를 접목해 그림책을 만들었다. 그의 첫 작품인 '위를 봐요'는 주인공 수지의 시선에 중점을 뒀다. "건축은 사람이 보는 기준에서 평면도를 그립니다. 아픈 수지가 높은 병원 건물에서 내려다본 사람들의 모습은 머리통밖에 보이지 않아 마치 '개미' 같죠." 정 작가는 어릴 때 손에 큰 화상을 입어 병원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때 생각한 이야기를 이 책에 고스란히 담았다. 정 작가는 "'위를 봐요'를 통해 '배려'를 배웠으면 한다"며 "아픈 수지를 위해 자신의 몸을 길거리에 눕혀 위를 쳐다보는 사소한 행동이 수지에게는 큰 위안으로 다가온다"고 설명했다. 정 작가는 이 책에 대해 "아이뿐 아니라 어른도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강조했다. "어른들은 한발 더 들어가 그림 속에 숨겨진 의미를 찾을 수 있어요. 그림책은 전 연령층이 모두 공감하고 읽을 수 있는 장르라는 점에서 매력적이죠."

'담'의 지경애 작가

지경애|담(반달), 픽션 부문

지경애(42) 작가는 어릴 적 추억이 담긴 '담'을 떠올리며 그림책을 만들었다. "시골 길을 걷다가 우연히 낡은 담에 팬티 한 장이 아무렇게나 걸린 걸 보았어요. 어릴 적 좋아했던 담의 온도, 촉감, 따뜻한 색감이 떠오르면서 가슴이 설렜죠." 동양화를 전공한 지 작가는 '담'이라는 공간에 그려진 낙서를 통해 추억을 이야기했다. 요즘 아이들에게 '담'은 단절을 상징할 수도 있지만, 지 작가에게 '담'은 어린 시절 놀이터이자 낙서장이 돼준 '친구'였다. 그는 "아이는 물론 사회생활에 힘들고 지친 어른도 이 그림책을 보고 위안을 얻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특히 이 작품은 서사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지 작가는 "교육적 의미를 전달하는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며 "아이와 어른, 독자가 그림책을 보는 그대로 느껴지는 감성을 받아들였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