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님, 두 사람이 모텔에서 같이 나오는 사진이 있는데, 이게 간통한 거지 뭡니까? 두 사람이 모텔에 왜 갔겠습니까?"

몇 년 전 법원에서 판사로 근무하면서 이혼 사건을 담당할 때의 일이다. 숙박 시설에서 나오는 사진에 찍힌 배우자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판사님, 제가 ○○○와 모텔에 같이 간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일 관계로 이야기할 게 있어서 간 것일 뿐입니다. 잠깐 이야기만 나누고 왔습니다." 간통은 '성관계'를 했다는 것이 증명돼야 하기 때문에 '손만 잡고 잤어요'식의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이다.

지난 2월 26일 헌법재판소가 간통죄 위헌 결정을 내리자 이날 나이트클럽은 '자유의 몸'이 된 것을 자축하는 성인 남녀들로 불야성을 누렸다는 기사를 보았다. 간통죄 폐지로 불륜 남녀는 영원히 자유의 몸이 된 걸까? 반은 그렇고, 반은 그렇지 않다. 형사처벌의 대상은 되지 않지만, 민사·가사상의 책임까지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간통죄가 폐지됐으므로 바람을 피운 사람이 구속되거나 징역형을 선고받는 형사상 처벌 대상에서는 벗어난 것이 맞다. 하지만 여전히 간통을 한 배우자와 불륜을 저지른 사람을 상대로 정신적 고통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물론 이혼 청구도 가능하다.

사실 간통의 경우 스스로 시인하지 않는 이상 간통 사실을 입증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게 문제였다. 예를 들어 남편과 내연녀가 호텔 방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방을 덮쳤는데 두 사람이 옷을 입고 있는 상태라면 간통의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것이 된다. 눈앞에서 남편이 다른 여자와 호텔 방에 들어가는 걸 본 부인은 대개 배신감과 분노에 휩싸이게 된다. 격해진 감정 때문에 너무 빨리 방을 덮쳐 증거 확보에 실패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배우자의 외도를 이유로 이혼 청구를 하는 경우 꼭 간통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법률상 '부정한 행위'는 이혼 사유가 되기 때문이다. 부정한 행위는 간통보다 훨씬 폭넓은 개념이다. 간통뿐만 아니라 간통에까지 이르지 않더라도 부부의 정조 의무에 충실하지 않는 행위를 포함한다. 따라서 호텔이나 모텔 방에 같이 있었다거나 호텔 등에서 같이 나오는 사진은 배우자의 '부정한 행위'를 뒷받침하는 유력한 증거가 된다.

그러면 어느 정도에 이르러야 '부정한 행위'가 있었다고 인정되는 것일까. 호텔이나 모텔 같은 숙박 시설에 간 것만 포함이 될까? 아니다. 여러 차례 연인 관계라는 것을 암시할 만한 내용이 담긴 문자를 오랜 기간 동안 주고받는 것 역시 부정한 행위가 있었다고 본다.

이혼 소송을 낸 부인 A씨는 어느 날부터 일을 핑계로 새벽에 귀가하거나 외박하는 남편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남편이 직장 동료 B씨와 수십 차례 문자를 주고받은 것을 알게 됐다. '자기야 사랑해♥'라는 문자는 물론 남편이 B씨의 집 근처를 찾아가 만난 것도 알게 됐다. 두 사람이 성관계를 했다는 증거는 없었지만 법원은 남편의 '부정한 행위'를 인정해 A씨가 낸 이혼 청구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남편과 직장 동료 B씨에게 혼인 파탄의 책임을 물어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간통죄가 폐지됐다고 간통의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