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눕혀 손으로 배를 만져보고, 어디가 가장 아픈지 물어보세요."

6일 오후 2시 성남 국군수도병원 응급의료지원센터. 21사단 GP에 근무하는 한 장병이 복통을 호소하자, 군의관 송예완(36) 대위가 컴퓨터 모니터를 보며 의무병에게 지시했다. 잠시 후 송 대위는 "명치 쪽이 아픈 걸로 봐서 체한 것 같으니, 하루치 소화제를 주고 한 끼는 굶으라고 하라"고 했다.

6일 오후 국군수도병원 응급환자지원센터에서 군의관과 간호장교가 모니터를 통해 전방부대의 한 장병을 원격진료하고 있다. 군은 올 하반기에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격오지 부대 등 40곳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국방부는 지난해 말부터 21사단 GP 2곳에서 근무하는 장병 150명을 대상으로 원격진료 시범사업을 하고 있다. 원격진료는 오전 9~10시 등 하루 세 차례, 의무사령부 담당 군의관 4명이 돌아가며 하고 있다. 올 하반기부터는 원격진료 시범사업을 육군 GP와 대대급 부대 30곳, 해·공군 격오지 부대 10곳 등으로 늘릴 계획이다.

간단한 원격진료로 큰 위험 방지

보건복지부·국방부·미래부 등은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도서 지역 등 농어촌 지역이나 원양 선박, 격오지 부대 등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정부는 원격의료를 하면 초기에 큰 의료 사고를 예방할 수 있고, 만성질환자 등은 수시로 의료진에게 상태를 점검받아 실질적으로 '주치의'를 두는 것이나 다름없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 1월 22일 21사단 GP 근무를 서던 한 일병은 근무 도중 두통·구역질 증상을 보였다. 의무사령부 군의관은 원격진료에서 "증상을 보니 단순 두통이 아니고 뇌 혈관종이 의심된다"며 "즉시 군 병원으로 후송해 진료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 장병은 당일 국군춘천병원으로 후송돼 CT 촬영 등을 한 결과 '뇌 혈관종(뇌에 혈관 덩어리가 기형적으로 생기는 병)' 판정을 받았다. 군 관계자는 "조기에 큰 병을 예방하는 원격진료의 장점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에 원격의료를 본격 도입하는 것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료계의 반발이 거세다. 대한의사협회는 "원격의료는 환자를 눈으로 직접 보고 손으로 만지며 진찰하지 않아, 오진(誤診) 가능성도 크고, 원격의료 기기는 사이버 해킹에도 취약하다"고 주장했다. 또 "원격의료가 대형 병원으로 확산되면, 동네 의원 환자가 대형 병원 원격진료로 몰리는 '환자 쏠림' 현상이 심화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복지부는 "원격진료는 동네 의원, 보건소를 중심으로 진행할 계획이며, 대형 병원에는 도입할 계획 자체가 없다"면서 "대상자도 농어촌 지역의 고혈압·당뇨 등 만성질환자 중심이라 동네 의원이 대형 병원에 환자를 뺏기진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원격의료 기기 시장 활성화 계획도 차질

정부가 원격진료를 정착시키려는 이유 중에는 원격의료 기기 등 향후 수출 시장의 주요 먹거리를 개척하겠다는 목표도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2019년 웨어러블 등 간단한 제품으로 자신의 건강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스마트 기기 시장 규모가 30억달러(3조3000억원)를 넘어설 전망이다. 미국은 원격의료에 필요한 광대역 서비스 보조금 등 예산으로 72억달러(7조9000억원)를 마련했고, 캐나다는 이미 전국 각지에 5700여개의 원격의료 시스템을 구축해 놓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2002년부터 원격의료 도입을 시도했지만 정부와 의료계가 합의점을 찾지 못해 난항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광의(廣義)의 원격의료 기기에 해당하는 스마트 헬스케어 제품 시장도 활성화가 안 돼 원격의료 기기 산업도 걸음마 수준이다. 건강 정보를 표시하는 스마트 기기가 나와도 관련 규정이 없어 기업들이 헬스케어 기기 사업에 진출하는 것을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신영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원장은 "IT 산업이 발전하면서 원격의료가 세계적으로 피할 수 없는 추세임은 분명하다"며 "동네 의원들이 원격의료 시스템을 마련하는 데 국고 지원을 더 해주는 등의 유인책을 마련해서라도 정부가 의료계와 갈등을 줄여가야 한다"고 말했다.

☞원격의료

의료인과 의료인, 환자와 의료인 사이에 모니터를 통해 환자 정보를 공유하고 진료하는 체계. 모니터로 환자 상태를 보며 초기 진단을 하는 '원격진료'와 의료인이 만성질환자 등 정보를 수시로 확인하고 맞춤 진단을 해주는 '원격 모니터링'으로 나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