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이틀 전이었던 지난달 16일 서울 서초동 강남역 부근 상가 1층 카페 유리창을 깨고 철거 용역들이 들이닥쳤다. 가게 안에 있던 업주 엄모(60)씨가 주방에 있던 칼을 집어들어 목에 댔다. "한 발짝만 들어와 봐! 확 죽어버릴 테니까!" 2시간 가까운 대치 후 철거반은 결국 물러났다.

갈등의 원인은 권리금이었다. 엄씨는 2011년 카페를 열면서 이전 업주에게 권리금 1억6000만원을 건넸다. 2년 뒤인 2013년 7월 건물주가 "재건축을 하겠다"며 세입 상인들에게 "가게를 빼달라"고 했다. 엄씨는 "들인 돈(권리금)이 얼만데 본전도 못 건지고 나가란 말이냐"며 버텼다.

건물주는 엄씨를 상대로 소송을 해 지난해 8월 승소했다. 지난해 10월과 지난 1월에도 크레인과 철거 용역을 동원해 강제집행을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엄씨와 상인들이 몸으로 막아섰다.

재개발 과정에서 권리금을 날리게 된 상인들의 저항이 참극으로 이어졌던 '용산 참사' 발생 만 6년이 지났지만, 극단적인 권리금 갈등은 지금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법의 보호 대상 밖에 있던 권리금을 법제화하려는 노력이 제자리걸음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전형적인 권리금 갈등은 건물주가 재건축을 이유로 세입자에게 퇴거를 통보하거나 건물주가 바뀌면서 계약 해지를 요구하는 경우다. 법에 호소할 수 없는 상인들은 극단적인 행동을 하거나 같은 처지의 상인들과 집단행동을 벌이기도 한다. 지난해 4월 서울 마포구 연희동 한 카페 주인은 "월세 두 달치가 밀렸다"는 이유로 건물주로부터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들이닥친 철거 용역을 막아서던 상인 단체 회원들이 형사 입건되기도 했다. 권리금 갈등을 겪고 있는 상인들의 단체인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 학술국장 김남균씨는 "건물주 말 한마디에 수천만~수억원을 떼이는 상황을 어느 세입자가 순순히 수긍하겠느냐"며 "마지막 세입자가 모든 손해를 뒤집어쓰는 '폭탄 돌리기'가 계속되는 한 물리적 충돌을 피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권리금은 앞서 장사를 하던 사람이 가게 인테리어에 투자한 것이나 단골을 일군 것에 대한 일종의 사례금이다. 지난해 9월 국토부 발표에 따르면 국내 전체 상가 권리금은 총 33조원(평균 2748만원). 권리금을 제대로 못 받을 우려가 있는 상가 임차인은 약 120만명으로, 그 규모가 약 1조3000억원에 달한다. 권리금은 그러나 법에 정해진 것이 아니라 세입자 간 관행적으로 이뤄진다. 김영두·위계찬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상가 점포 권리금을 받지 못하는 이유 중 63.6%가 '주인이 인정하지 않아서'다.

정부는 지난해 9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마련, 최초로 권리금 법제화에 나섰다. 세입자에겐 최초 5년간 상가 계약 갱신권을 보장해 권리금을 회수할 시간을 주고, 권리금 회수를 방해하는 건물주에겐 손해배상 책임을 지운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의원 입법 형태로 11월 발의된 개정안은 그러나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권리금을 주지 않으려는 건물주에 대한 제재 방안으로 여당은 손해배상 소송을, 야당은 형사처벌을 주장하고 있어 합의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권리금 법제화 자체를 반대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판교에 상가 건물을 갖고 있는 민모(74)씨는 "권리금이 객관적인 지표에 따라 투명하게 계산되는 것도 아닌데, 권리금을 법제화해 건물주에게 책임지게 하면 세입자들이 멋대로 권리금을 부풀려 요구해 결국 상가 투자를 막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현행 민법도 재건축에 의한 퇴거 통보나 계약 만료는 건물주의 정당한 권리로 보고 있어서, 권리금에 대해서는 건물주의 책임이 없다는 반론도 여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