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이름은 이미 구한말부터 쓰이고 있었다."

황태연〈사진〉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논문 '대한민국 국호의 기원과 의미'를 통해 이렇게 밝혔다. '대한민국(大韓民國)이라는 국호(國號)는 1919년 상해 임시의정원에서 처음 국호로 채택됐다'는 기존 통설보다 국호의 유래를 20년 더 끌어올릴 수 있는 주장이다. 황 교수는 오는 6월 한국정치사상학회 토론회에서 이 논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황 교수는 1899년 4월 24일자 독립신문의 논설과 1907·1909년의 대한매일신문 기사를 근거로 든다. 독립신문은 당시 논설에서 대한제국의 재정(財政) 상황을 우려하면서 "당장 눈앞의 이익을 생각해서 동전만 지어내더니 지금 와서 보면 이해(利害) 다소(多少)가 어떠한가. 어쨌든 대한민국 대계(大計)를 위해 대단히 애석하게 여긴다"고 보도했다. 정식 국호는 아니지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이름이 구한말 언론에서 보도된 첫 사례인 셈이다.

황 교수는 대한매일신보의 1907년 1월 6일자 한문판과 1909년 5월 30일자 국한문혼용판에서도 '대한민국'이 사용된 사례를 찾았다. 1909년 독자 투고에서는 어니스트 베델(1872~1909) 당시 대한매일신보 사장의 타계를 애도하면서 "대한민국이 함께 함몰하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독립신문의 발행 부수는 3000부, 대한매일신보는 1만3000여 부에 이르렀다. 황 교수는 "당시 신문 기사로 추정할 때 '대한민국'은 식자층(識者層)에서는 폭넓게 통용되던 단어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학계는 대한제국에서 '대한'을 가져왔으며, '민국'은 1911년 신해혁명 직후 수립된 중화민국(中華民國)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황 교수는 "그럴 경우 우리의 애국지사들이 조선의 옛 종주국인 청나라를 계승한 중화민국의 국호를 흉내 낸 것으로 보아야 하는 모순이 발생한다"면서 "자주독립 국가를 되찾기 위해 수립한 상해 임정이 그 국호부터 '비자주적'이고 '사대주의적'이었다는 주장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대한민국'의 어원(語源)을 조선 후기부터 사용됐던 '백성의 나라'라는 의미의 '민국(民國)'에서 찾았다. 황 교수는 당시 '민국'이 오늘날 공화정(共和政)의 의미가 아니라 '백성이 곧 나라'라는 국민국가(國民國家)라는 의미일 것이라고 보았다.

황 교수는 "영조 이전까지는 '백성과 나라'라는 병렬적 의미로 쓴 경우가 많았지만, 영조를 기점으로 그 뒤에는 80~90%가 '백성의 나라'라는 민본주의적 의미로 썼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