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종말'과 '3차 산업혁명' '엔트로피' 등의 베스트셀러 저자인 제러미 리프킨(70)은 '행동하는 미래학자'로 불린다. 과학기술의 변화와 에너지 혁명이 미래 사회에 가져올 영향에 대한 집필 활동에 그치지 않고, 세계 정부·기업의 자문역을 맡아 실제로 미래에 대비하는 액션 플랜 수립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EU(유럽연합)는 태양열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renewable energy)의 발전으로 에너지 비용이 거의 공짜가 된다는 그의 비전을 받아들여 재생에너지에 초점을 맞춘 '3차 산업혁명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 리커창 중국 총리 등이 그의 주요 고객이다.

지난 24일 인터뷰를 위해 미 메릴랜드주 베데스다에 있는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그는 연설문 원고를 수정하고 있었다. 3월 초 융커 EU 집행위원장의 초청을 받아 EU 회원국들을 상대로 강연할 원고였다.

그는 1945년 1월생으로 만으로 일흔이 넘었다. "무엇이 당신을 그렇게 정력적으로 활동하게 만드나" 묻자 그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그는 "내가 생각하는 미래 사회는 내가 죽기 전엔 오지 않을 것"이라고 운을 뗐다. 이어 "하지만 하루라도 일찍 기후변화(지구온난화)에 대응하지 않으면 인류에게 대재앙이 올 것"이라면서 "지금 같은 온난화 속도라면 2090년엔 세계 생물종의 70%가 멸종한다는 경고가 있다"고 말했다.

그의 책은 한국에 '종말 시리즈'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의 첫 베스트셀러인 '노동의 종말(The end of work)'을 제외하면 그가 종말이라고 이름 붙인 책은 없다. '소유의 종말'의 원제는 '접근의 시대(The age of access)'이고 '육식의 종말'의 원제는 '쇠고기를 넘어서(Beyond Beef)'이다.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이 미국 메릴랜드주 베데스다에 있는 사무실에서 사물인터넷과 에너지 혁명이 불러올 미래의 모습을 설명하고 있다. ‘노동의 종말’ ‘3차 산업혁명’ 등 세계적 베스트셀러를 쓴 그는 세계 정부·기업의 자문 역할로도 활발하게 활동해 ‘행동하는 미래학자’로 불리고 있다.

―종말 시리즈 덕분에 한국에선 당신이 종말론자란 우스갯소리가 있다.

"사실 나는 종말을 얘기한 게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출판사는 책을 더 잘 팔기 위해 더 자극적인 제목을 원한 것 같다(웃음)."

―작년 출간한 '한계비용 제로사회'에서 "기술발전 덕분에 재화와 서비스를 추가 생산하는 비용(한계비용)이 제로(0)가 된다"고 했다. 무슨 뜻인가?

"컴퓨터·인터넷의 보급과 기술 경쟁 격화로 생산비용이 거의 제로에 수렴한다는 뜻이다. 정보화 산업의 예를 들어보겠다. 스마트폰 앱(애플리케이션)은 개발 비용과 같은 초기 고정비용이 들지만, 일단 만들고 나면 아무리 많은 사람이 내려받아도 기업에 추가로 발생하는 비용(한계비용)이 없다. 유튜브에서 싸이의 강남스타일 조회 수가 늘어난다고 싸이가 비용을 더 부담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되면 많은 사람이 이용할수록 원가는 점점 제로(0)에 가까워진다."

―한계비용 제로 현상이 정보화 산업엔 통용될 수 있지만, 의식주나 제조업엔 적용될 수 없는 것 아닌가.

"많은 경제학자는 정보화 산업의 기반인 가상공간과 달리 물리적 실체가 있는 오프라인 경제엔 방화벽(firewall)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방화벽이 무너지고 있다. 로봇을 이용한 생산이 늘어나는 데다 통신·물류·에너지 같은 생산 인프라가 디지털로 변하면서 제조업의 생산원가가 낮아지고 있다. 컴퓨터 하드드라이브의 1기가바이트당 가격은 2000년 44달러였지만, 지금은 7센트로 600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에너지 가격이 거의 제로로 떨어지고, 세계를 연결하는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이 확산되면 이 같은 현상은 심화될 것이다."

―원유 가격 같은 에너지 비용이 공짜가 될 수 있나.

"석유와 석탄과 같은 화석연료 중심 사고로는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재생에너지는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 재생에너지 투자에 가장 열심인 독일의 예를 들어보자. 독일은 현재 에너지의 27%가 태양열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에서 나온다. 이 비율이 2020년엔 35%로 올라가고, 2040년엔 거의 모든 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할 계획이다. 태양열과 풍력의 장점은 한계비용이 제로라는 것이다. 한번 설치하면 태양이나 바람은 우리에게 비용을 청구하지 않는다. 태양열발전 비용은 획기적으로 감소했다. 태양열로 전력 1와트를 생산하는 비용은 1970년에 78달러였지만, 지금은 36센트로 줄었다."

―사물인터넷의 보급이 어떻게 생산비용을 떨어뜨리나.

"사물인터넷은 지구상 모든 활동에 관한 정보를 센서를 통해 빅데이터로 제공한다. 가로등에 부착된 센서는 주변 빛을 감지해 가로등이 스스로 밝기를 조절하게 해준다. 대형마트나 물류센터에 설치된 센서는 어떤 제품이 잘 팔리는지 관련 정보를 판매 및 생산 부서에 전달한다. 앞으로 이런 센서들은 태양열을 에너지로 쓰기 때문에 유지 비용도 거의 들지 않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기업의 재고나 물류, 생산 비용이 획기적으로 떨어질 것이다. 세계에 깔린 센서 수는 2007년 1000만개였지만, 2013년엔 35억개를 넘었다. 2030년이면 100조개가 사물인터넷으로 연결될 것이다."

―한계비용 제로는 소비자 입장에선 반가운 소식이지만, 경제 전체적으론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당장 공장 자동화로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는 '고용 없는 성장' 현상이 나타나고 있지 않나.

"전통적인 제조업에 의존하는 고정관념으론 고용 없는 성장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세계가 겪고 있는 경기 침체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저성장과 일자리 감소는 인류 역사에서 산업구조가 바뀔 때마다 반복돼온 과도기적 현상이다."

―에너지와 사물인터넷이 이끄는 3차 산업혁명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것인가.

"그렇다. 독일은 앞으로 40년간 건물 100만개를 사물인터넷으로 연결하는 리뉴얼 작업에 착수했다. 통신 인터넷과 에너지 인터넷, 교통 인터넷을 연결하는 거대한 사물인터넷 시대에는 센서가 필수적이다. 센서에 태양열 에너지를 연결하는 작업도 시작될 것이다. 이런 새로운 인프라 투자가 전자업계뿐 아니라 건설 같은 업종에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다."

[리프킨 교수는…]

과학기술 변화의 영향 연구, 세계 정부·기업 자문 역할

1945년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 출생으로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터프츠대 플레처스쿨에서 국제관계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을 넘나들며 자본주의 체제의 미래와 인간의 생활방식, 현대 과학기술의 폐해 등을 비판해온 경제학자이자 문명비평가, 행동주의 철학자다.

현재 미 메릴랜드주 베데스다에 있는 경제동향연구재단(FOET) 이사장이자 와튼 스쿨 교수, EU(유럽연합)와 중국 정부의 자문역 등을 맡아 과학기술 변화가 경제·노동·사회·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면서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종말 시리즈로 불리는 '노동의 종말' '소유의 종말' '육식의 종말'을 비롯, 에너지 낭비가 가져올 재앙을 경고한 '엔트로피' 등 20권의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