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아진 정치부 기자

"99만원, 105만원 받은 공직자 중에 99만원짜리 죄질이 더 나쁠 수도 있는데 105만원짜리만 형사처벌을 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홍일표 새누리당 의원)

"(100만원 이하 받으면) 과태료를 얼마나 내야 하는지도 정해놓지 않았네요. 이것만으로도 위헌 소지가 있는 것 아닌가요?"(이상민 법사위원장)

"…다 옳으신 지적입니다."(이성보 국민권익위원장)

'김영란법'(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처리된 3일 국회는 '봉숭아 학당'을 떠올리게 했다. 본회의 표결 직전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이 법의 허술함과 위헌 요소 등에 대한 여야 의원들의 지적이 쏟아졌다. "무슨 이런 황당한 법이 있냐" "기가 막힌다"는 표현까지 나왔다. 법률 전문가인 이들이 이런 말을 할 때는 나중에 법이 문제가 될 경우를 대비해 면피용 근거를 남기기 위한 것이거나 정말 무책임하거나 둘 중 하나다.

법사위 여야 의원들은 "국민과 약속했기 때문에 통과시킬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 통과된 김영란법이 국민이 원했던 '그 법'인지는 따져볼 일이다. 당초 '김영란법'은 '벤츠 검사'로 상징되는 공직자를 처벌하자는 취지였다. 그런데 2년 6개월이 흐르면서 상당 부분 변질됐다. 이상민 법사위원장은 "정무위원회가 갑자기 언론인과 민간 부문까지 대상을 확대시키면서 부정 청탁에 관한 규정들도 바뀌었다"며 "이 바람에 논란을 자초했다"고 했다.

이렇게 통과된 '김영란법'의 영향권에는 1000만명이 들어와 있다는 분석도 있다. 직접적인 대상자만도 공무원, 공공기관 직원, 교사, 언론인과 이들 배우자 등 300만명 정도다. 이들이 조금이라도 업무와 관련된 만남은 피해야 할 판이니 호텔, 골프장은 물론 식당, 술집 등 자영업자까지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제 업계에서는 "서민 경제 다 죽이겠다는 거냐"는 반응이 나온다. 따지고 들면 김영란법은 민생과 사실상 직결된 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치권은 이런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부실 공사'를 했다.

또 여야는 이 와중에 '김영란법'의 일부 처벌 규정에서 국회의원을 뺐다. 부정 청탁 유형과 유사하더라도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직자와 정당은 고충 민원을 전달받는 등의 경우에 처벌받지 않는다는 조항을 넣은 것이다. 기자가 만난 국회의원들은 김영란법 통과 전에는 "설마 되겠느냐"라고 했었다. 통과된 뒤에는 "수정이 불가피하다"고 하고 있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이상민 위원장도 4일 "여러 부작용과 미비점을 보완하겠다"고 했다. 입법(立法)의 엄중함은 어디서도 찾기 힘든 지경이다.

정치권은 '김영란법' 처리에 있어 자신들의 이해와 관련된 부분에만 철저함과 꼼꼼함을 보이고 법 처리 과정은 무책임함과 엉성함 그 자체였다. '김영란법'이 헌법재판소에서 불량품 판정을 받게 될 경우 그 대가는 고스란히 국민과 사회가 져야 한다. 그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은 국회의원들이 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