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효섭 논설위원

국회가 조만간 정치개혁특위를 구성해 선거법 개정 논의를 시작한다. 벌써부터 여야의 책상에는 '청구서'가 쌓여 있다. 헌법재판소는 인구가 가장 많은 선거구와 가장 적은 선거구의 인구 편차를 3대1에서 2대1로 줄이라고 요구했다. 중앙선관위는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석패율제를 도입하고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원을 현재 246대54에서 200대100으로 조정하자고 제안했다. 학계와 여성계 등에선 '비례대표 확대' 주장이 쏟아지고 있다.

여야는 지금 머리가 아프다. 현행 300석 의원 정수를 묶어두고선 이 복잡한 요구들을 반영할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300석을 전제로 헌재 결정을 이행하면 인구가 적은 농촌 지역구 20여 곳이 통폐합된다. 선관위 안(案)까지 가미하면 지역구 감소 폭은 50여 곳으로 늘어난다. 자기 선거구가 없어질 판에 지역구 의원들이 비례대표 증원에 순순히 찬성할 리 만무하다. 정치권에서 "의석 수가 그대로면 선거법은 사실상 현상 유지로 결론 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이다.

국회가 의석 수 300석 틀에서 자유로워진다면 어떻게 될까. 먼저 농촌 지역구 중 상당수가 살아남을 수 있다. 우리 국민은 오랜 기간 국회의원을 '주민 대표'뿐 아니라 '지역 대표'로 여겨 왔다. '표의 등가성(等價性)'만 앞세워 농촌 선거구를 없애면 모든 면에서 도시에 열세인 농촌 주민들의 반발을 피하기 힘들다.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석패율제를 실시하면 여당은 호남에서, 야당은 영남에서 확실히 당선자를 낼 수 있게 된다. 비례대표를 늘리면 여성·청년·장애인 같은 정치적 약자와 각 분야 전문가들에게 더 많은 국회 진출 기회가 주어진다.

의원 수 증원은 국회의원의 '갑(甲)질'과 부정을 막는 데도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 국회는 지금 입법권과 인사청문권 등을 통해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상 의원 수를 늘리면 금배지 가치도 떨어지고, 의원 개개인이 차지하는 권력의 몫도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상임위를 더 세분하고 국회를 더 자주 열어서 각종 의안 심사와 입법 처리 속도를 높일 수도 있다. 정치 개혁·혁신이 다른 게 아니다.

물론 의원 수 증원은 여전히 정치적으로 뜨거운 감자라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국회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불만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그래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할 사람은 국회의원들이다. 국회는 현 의석 수 유지, 의석 수 축소와 증가 등 모든 경우의 수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무엇이 국가 발전과 국민 이익에 가장 부합하는 길인지 판단해야 한다.

다만 의원 수 증원을 의제로 삼을 경우 지금 누리고 있는 여러 특혜와 기득권을 함께 내려놓겠다고 분명히 약속해야 한다. 국민은 제 할 일도 못 해온 국회가 의석 수를 늘려 더 많은 세금을 쓰겠다고 나오면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의원들이 국회 소속 입법 전문가들의 도움을 더 받고, 세금으로 충당하는 각종 인적·물적 지원을 합리적으로 조정한다면 현재의 예산 범위 안에서도 얼마든지 의석을 더 만들 수 있다고 본다. 우리보다 의회 정치 수준이 한참 높은 독일·스웨덴 국회가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우리 국회도 이제 자기를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