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현철 논설위원

지난 11일 서울 종로 세운상가에 있는 '팹랩(fab lab) 서울'에서 종이비행기로 드론(무인 비행기)을 만드는 강좌가 열렸다. 팹랩은 3D 프린터, 레이저 커터(절단기) 등 컴퓨터와 연결된 디지털 공구를 갖춰놔 누구라도 디지털 도면만 있으면 물건을 만들 수 있는 공방(工房)이다. 종이비행기 드론은 종이로 접은 후 수신 장치와 프로펠러, 꼬리날개를 붙이면 완성이다. 부품은 3D 프린터로 만들 수 있다. 스마트폰엔 비행기 조종에 쓸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 심는다. 10m 거리에서 무선통신이 되는 블루투스 기술을 쓰면 스마트폰으로 종이비행기를 조종할 수 있다.

장난감 같지만 미국에선 이미 종이비행기 드론으로 돈을 버는 기업이 있다. 이스라엘 공군 출신 샤이 고테인이 2006년 창업한 '파워업'이다. 작년에 출시한 종이비행기 드론인 파워업 3.0 모델은 인터넷 쇼핑몰 아마존에서 50달러쯤에 살 수 있다. 이 회사는 인터넷으로 벤처기업의 자금을 모아주는 킥스타터라는 핀테크 기업을 통해 작년에 사업 자금을 120만달러(약 13억원) 모았다.

제조업이라면 철강·조선·자동차 등 중후장대(重厚長大)한 공장만 떠올리기 쉽지만 미국을 중심으로 점차 작은 제조업이 대안으로 등장하고 있다. 3D 프린터 혁명이 제조업의 지형을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소형 드론과 의료 보형물 등 분야가 대표적이다. 공장에서 제품을 만들려면 금형을 만들고 프레스로 찍은 후 절삭기로 깎고 조립해야 한다. 하지만 3D 프린터는 작은 공방에 도면만 있으면 어떤 모양이든 척척 만들 수 있다. 미래의 개인 맞춤형 소량 생산에 알맞은 도구다. 가격도 보급형이 500달러대로 떨어졌다.

3D 프린터가 널리 보급되면서 미국에선 스스로 제품 아이디어를 내고 만드는 '메이커 무브먼트(제작자 운동)'도 확산되고 있다. '메이커'로 분류되는 미국인은 1억3500만명으로 18세 이상 성인의 57%에 이른다. 이들이 이용하는 디지털 공방은 미국에서 우후죽순처럼 퍼지고 있다. 우리도 라디오 키트를 납땜하고 조립 PC를 만들던 학생들이 커가면서 전자 산업이 발전했던 기억이 있다.

한국이 제조업 강국(强國)의 명성을 이어가려면 작은 제조업에도 인재가 몰리게 해야 한다. 작지만 디지털화한 21세기 제조업의 융성(隆盛)을 준비해야 한다. 작은 제조업의 요람인 디지털 공방은 장소나 입지에 구애받지 않는다.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도로 등 기반 시설을 까느라고 수백억원을 들일 필요도 없다. 공방에 3D 프린터, 레이저 커터 등을 설치하려면 1억원 정도면 된다. 당장 청년을 지도할 강사가 없다고 걱정할 일도 없다. 서울이나 미국의 강좌를 인터넷으로 연결해 가르치면 된다.

미래부는 작년 6월 2020년까지 국민 1000만명에게 3D 프린터 활용 교육을 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정부가 세우는 디지털 공방인 '무한상상실'도 대폭 늘린다고 했다. 그러나 중앙 부처의 숫자 과녁 맞히기 식 정책보다는 미래의 제조업 인력을 키울 실질적 방안이 필요하다. 이는 현장에 가까운 지방자치단체가 앞장서야 한다. 지자체들은 도로를 넓히고 공단을 세울 궁리만 할 게 아니라 작은 제조업에 맞는 인재를 키울 방안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