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미술 시장의 관심이 현대미술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Picasso·1881~1973)의 작품에 쏠렸다. 발단은 피카소의 손녀 마리나 피카소(64)의 '선언'이다. 할아버지 사후(死後), 회화 300여점을 포함해 작품 1만여점을 물려받은 마리나 피카소는 최근 "1935년작 회화 '가족'을 시작으로 할아버지의 작품을 하나씩 팔아 그 돈으로 베트남에 어린이 병원을 짓는 등 자선 사업에 쓰겠다"고 밝혔다. 피카소는 회화, 드로잉, 판화, 조각, 도자기 등 약 5만점의 작품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화가’로 불리는 파블로 피카소.

피카소 가격 떨어지나

피카소 작품 '대량 방출'을 놓고 시장 전망은 엇갈린다. 대량 공급이 전체적인 피카소 작품 가격을 떨어뜨릴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미술품 가격은 희소성과 비례하기 때문이다. 손녀가 상속받은 작품이니만큼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명화(名畵)'가 포함돼 있을 수 있다. 따라서 갑자기 최상급 작품들이 한꺼번에 풀리면 새로 나온 작품도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기 힘들고, 이미 시장에 나와 있는 작품 가격도 동반 하락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서진수 미술시장연구소장(강남대 교수)은 "미술 시장이란 회화 중 가장 영향력 있는 것 몇 점에 좌지우지되는 게임이다. 좋은 작품이 한꺼번에 쏟아진다면 피카소 작품의 전반적인 가격 하락을 가져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마리나가 2013년 소더비 경매를 통해 내놓은 '회색 옷을 입고 앉아있는 여인'은 680만달러(약 75억원)에 팔렸다. 마리나는 "당시 자선 사업 자금을 모으기 위한 거라 더 받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는데 기대에 못 미쳤다"면서 "이번엔 경매사를 통하지 않고 개인적인 루트로 작품을 팔겠다"고 말했다.

반면 김순응 아트컴퍼니 대표는 "손녀가 팔겠다는 작품 중 회화는 300점이라고 하는데, 피카소 시장은 겨우 300점 정도로 가격이 좌우될 시장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앤디 워홀 재단의 작품 대량 방출로 앤디 워홀 작품 값이 떨어질 거라고 했는데 시장에는 영향이 없었다"고 했다. 지난 2012년 앤디 워홀 재단은 기부 활동 수익금을 창출하기 위해 보유하고 있던 워홀 유작 2만여점을 경매에 내놨다. 당시 미술 시장은 '대량 공급'에 따른 '가격 하락'을 우려했지만, 그 우려는 현실화되지 않았다.

피카소의 경매가격 1~3위 작품. 왼쪽부터 ‘누드, 푸른 잎사귀와 흉상’(약 1179억원·이상 현재 환율), ‘파이프를 든 소년’(1153억원), ‘고양이와 함께 있는 도라 마르’(1054억원).

작품값 최정상의 화가, 피카소

피카소는 '세상에서 작품 값이 가장 비싼 화가'다. 그의 작품 값이 미술 시장의 척도가 된다. 이번 '대량 방출'에 미술계가 긴장하는 것도, 피카소 작품 값이 떨어지면 다른 작품 값도 순차적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피카소도 이 값에 팔리는데 저건 왜 이렇게 비싸?"라는 항변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뉴욕에 본부를 둔 미술품 가격 정보 사이트 아트넷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미술 시장 규모는 161억달러(약 17조8000억원). 그중 피카소 작품 거래액은 4억4900만달러(약 4972억원)로 앤디 워홀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 100' 저자인 이규현 이앤아트 대표는 "피카소 작품 값은 꾸준히 최정상을 지켰다. 한 해에 팔리는 총 작품 거래액에서 몇 번 다른 작가들에게 1위 자리를 내주긴 했지만, 그래도 피카소를 '제일 비싼 작가'라고 하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경매에 나온 피카소 작품 중 가장 비싸게 팔린 것은 2010년 5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1억648만2496달러(약 1179억원)에 팔린 '누드, 푸른 잎사귀와 흉상'(1932)이다. 피카소가 28세 연하의 애인 마리 테레즈 발테르를 그린 이 그림은 당시 세계 미술품 경매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2013년엔 같은 여성을 그린 '꿈'(1932)이 개인 거래에서 1억5500만달러(약 1716억원)에 팔리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누구나 아는 작가라 비싸

컬렉터들에게 피카소 작품을 가진다는 건 '나는 미술에 대한 식견과 재력이 있어요'와 동의어다. 피카소는 내가 이 작품을 왜 가지고 있는지, 이 작가가 누구인지 설명할 필요가 없는 작가다.

피카소는 90세를 넘기도록 장수(長壽)했고, 시대상을 반영한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대표작 '아비뇽의 아가씨들'(1907), '게르니카'(1937) 등에서 드러나는 입체주의의 도입은 그를 서양미술사의 '혁명적 화가'로 기록했다. 피카소는 인물의 옆모습과 앞모습을 같은 평면에 그려넣거나 팔다리를 길게 늘여 추상화함으로써 르네상스 이후 500여년간 서양미술을 지배해왔던 '보이는 것을 실감 나게 그린다'는 철학에서 탈출했다.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는 "피카소는 후배 미술가들에게 진정한 자유를 줬다. 보이는 것과 무관한 형태, 작품 속에만 존재하는 새로운 세계를 추구해도 되도록 해줬다"고 말했다.

다작(多作)이라 유통량이 많은 것도 시장이 커지고 가격이 유지되는 데 도움을 줬다. 배혜경 크리스티 한국사무소장은 "피카소는 웬만한 컬렉터라면 관심을 가질 수 있을 정도로 가격 범위가 넓다. 1억달러짜리 유화도 있지만 동판화는 2500달러짜리도 있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개인사도 그의 신화적 면모를 강화시키며 작품 값 견인차 역할을 했다. 피카소는 두 번 결혼했고, 세 명의 여자와 네 명의 자식을 낳았다. 일곱 명의 여인과 염문을 뿌렸다. 피카소의 화려한 여성 편력은 그러나 가족에겐 상처가 됐다. 피카소의 첫 부인 올가의 손녀인 마리나는 어린시절 가난했고, 할아버지의 대저택 앞에 서서 돈을 구걸하곤 했다. 마리나는 "할아버지는 진심으로 나를 손녀로 여긴 적이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