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경제 활성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고 세수(稅收)가 부족하니까 국민에게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고 하면 그것이 정치 쪽에서 국민에게 할 수 있는 소리냐"고 말했다. 대통령은 "국민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경제도 살리고 복지도 더 잘해 보자는 그런 심오한 뜻이 담겨 있는데, 이걸 외면한다면 국민을 배신하는 것 아니냐"고도 했다. 최근 여야 정치권에서 복지 구조조정과 증세(增稅)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는 것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원론적으로 보면 대통령 말도 일리가 있다. 경제가 살아나야 세수가 늘어나고 복지 지출 여력도 커진다. 문제는 경기 침체로 세수가 차질을 빚고 있는 게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지난 2년 동안 20조원 가까운 세수 차질이 났고, 올해도 수조원 세수 부족이 예상된다. 반면 기초연금, 무상 보육·급식, 반값 등록금 예산은 2012년 14조원에서 올해 27조원으로 배 가까이 불어나고 있다. 대통령의 말은 우리 경제의 이런 현실과 큰 괴리(乖離)가 있다.

박 대통령은 대선 때 복지를 포함해 135조원에 이르는 공약을 내놨다. 그러나 65세 이상 노인 모두에게 기초연금을 지급하겠다고 했다가 대상을 70%로 줄이는 등 경제 형편에 맞춰 공약을 축소 조정할 수밖에 없었다. 국민의 세 부담이 늘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약속도 사실상 지키지 못했다. 담뱃값 올리고, 월급쟁이들의 소득세 부담도 늘렸다가 '꼼수 증세' 논란을 자초했다. '증세 없는 복지' 약속을 지키면서 공약을 다 이행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대통령이 절실하게 느끼고 있을 것이다.

대통령은 취임 후 2년 동안 복지 구조조정과 세수 확보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런 박 대통령이 이제 막 시작된 정치권의 논의를 타박하고 나선 데 대해 국민은 어리둥절한 기분이다. 대통령이 지적한다고 정치권의 복지·증세 논의가 중단될 리도 없다. 오히려 대통령의 현실 인식에 대한 국민의 의구심만 커질 뿐이다.

대통령은 정치권의 논의를 막을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논의에 적극 참여할 필요가 있다. 우선 대통령 자신부터 과거 과도한 복지를 약속했다가 지키지 못하게 된 것을 사과하고 복지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각오를 밝혀야 한다. 국정(國政) 최고 책임자로서 여야 수뇌부와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데 앞장서야 할 사람은 다름 아닌 대통령 본인이다.

[사설] 文 대표, 거친 말 앞세우면서 '국민統合' 이룰 수 있겠나
[사설] 넥슨·엔씨, 세계시장 팽개치고 안에서 진흙탕 싸움만 해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