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오늘 하루 된장녀예요(웃음). 지금까지 된장 한 수백 개는 집어넣은 것 같네요."

600평 규모 물류센터. 벽면을 따라 펼쳐진 컨베이어벨트 위로 일렬종대로 놓여 있는 상자들이 매초 조금씩 전진했다. 컨베이어벨트 옆에 한가득 쌓여 있는 500g짜리 된장 한 통을 상자에 집어넣는 오미령 아름다운가게 매니저의 손놀림이 분주했다. 오씨 양옆으로 연두색 앞치마를 두르고 쭉 늘어선 이들 손에 들린 건 라면, 지퍼백, 설탕 같은 식료품과 생필품들. 17가지 물건을 담은 상자가 벨트 끝에 도착하면, 테이프를 둘둘 감고 트럭으로 옮기는 건 남자 간사들의 몫이다.

지난달 31일, 서울 용답동 아름다운가게 되살림터에서 진행된 ‘나눔보따리’ 포장 현장. 나눔보따리는 아름다운가게에서 12년간 이어온 대표적인 배분사업이다. 포장된 보따리는 일주일 후, ‘배달천사’를 통해 전국 취약계층 5000가구에 직접 전달된다.

"저 방금 지나간 박스에 샴푸를 빼먹어서, 레일 잠시 멈춰 주세요!"

"자자, 음악 들으면서 동시에 물건을 넣다 보면 집중력이 떨어질 수 있어요. 상자에 물건 하나라도 빠지면 안 되는 거 아시죠? 정해진 위치에 물품이 제대로 놓이도록 집중해주세요." 2층 난간에 서서 현장 작업을 총괄하던 조양형 아름다운가게 순환지원국장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마치 공장의 생산라인 같은 이곳은 서울 용답동에 위치한 아름다운가게 물류센터 '되살림터'. 지난달 31일, 설을 맞아 전국 곳곳에 있는 독거노인들께 전달될 '나눔보따리'를 만드는 포장 작업 현장이다.

◇나눔보따리, 뒷단의 포장, 그 12년 역사

'나눔보따리' 사업은 아름다운가게의 대표적인 배분 사업이다. '배달천사' 자원봉사자가 지역 독거노인과 조손가정의 집을 직접 방문해, 갑티슈·참치·수분 크림·비누·치약·김·칫솔 등 10만원 상당의 생필품 17종을 담은 나눔보따리를 전달하는 사업이 올해로 12년째다. 아름다운가게의 수익금에 기업들의 현물 기부가 더해져 박스 하나가 꾸려진다. 지금까지 자원봉사자 약 3만5000명이 나눔보따리 4만여 개를 들고, 지역 곳곳의 독거노인들을 만나 왔다.

쌓인 시간만큼, 곱씹을 기억도 한가득이다. '나눔보따리'라는 이름처럼, 처음 3년간은 실제 '보따리'에 물건을 담아 전달했다. 보따리가 약해 물건이 자꾸 쏟아지거나 터졌던 까닭에, 박스에 담기 시작한 게 지금껏 이어져 왔다. 2008년 물류창고에 컨베이어벨트가 들어오기도 전 손으로 직접 포장 작업 하던 때는 지금도 내내 회자되는 추억거리다.

"1회 때는 풍문여고 강당 빌려서 바닥에 물건 쫙 깔아놓고, 왔다갔다하면서 수작업으로 포장했어요. 다들 처음이었고 손에 익지가 않으니, 하루 꼬박 포장하고 밤늦게까지 해서야 겨우 끝났죠. 지금이야 컨베이어벨트가 다 움직여주는데, 지금 간사님들 포장하는 건 일도 아니지(웃음)."(이현승 아름다운가게 참여나눔국장)

시행착오를 거치며 보따리에 담기는 물품 하나에도 노하우가 쌓여왔다. 이제는 장기 보관도 쉽고 요리도 편한 꽁치·참치 등의 통조림 종류나 된장을 넣는다. 12년이 쌓여서인지, 이제는 곳곳에서 먹을거리 지원이 많이 들어오는 편이다.

"린스, 헤어팩을 저소득층 노인분들께 드리면 오히려 '이런 거 안 쓴다. 차라리 샴푸 두 개를 달라'고 말씀하세요. 이전엔 일단 '다 있으면 쓰시겠지' 하는 생각에 린스 같은 후원 물품들을 같이 넣곤 했거든요. 그런데 나중에 만나뵙고 듣고 해보면 본인들 필요한 게 아니면 의미 없더라고요. 하다못해 '삼양라면' 하나도 수요조사 통해 이분들이 가장 좋아하는 라면으로 나와서 결정한 거예요. 그래서 이제는 린스 기증한다는 곳이 있으면 아예 대신해서 샴푸나 수분 크림을 기증해달라고 부탁해요. 비닐 팩이나 밀폐용기 같은 경우에는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것들인데, 어르신들이 막상 사기 버거워하시는 것들이라 꼭 챙기고요. 또 한번은 한 노인복지관에서 나눔보따리 상자에 소고기를 넣어 달라고 하기도 했어요. 가격이나 배달 유통기한 때문에 안 된다고 했죠."(황현이 아름다운가게 나눔사업팀장)

매번 나눔보따리를 하고 나서 받은 분들께 설문 조사가 진행된다. 나눔보따리 구성품의 틀을 잡아온 노하우다.

◇나눔보따리 배달천사 팬도 생겨나

아침 8시부터 컨베이어벨트가 돌아간 지 3시간 만에 나눔보따리 600박스가 완성됐다. 한가득 쌓여 있던 종이상자들이 '나눔보따리'로 새롭게 태어났다. 일주일 후 '배달천사' 자원봉사자들의 손을 거쳐, 지역 곳곳의 독거노인들에게 전달될 '선물 꾸러미'다. 전국 자원봉사자 약 5000여명이 5000가구 독거노인에게 박스를 전달할 예정이다. 서울 지역에만 총 770가구다. 지역사회 복지기관을 통해 연결된 홀몸 어르신이나 조손가정 가구들이다. 최대한 많은 분을 방문하고 만나뵙는 게 목적이다 보니, 중복 수혜는 3차례까지로 제한한다. 혹시 집에 사람이 없어 전달을 못 했을 경우, 나갔던 보따리는 되살림터로 가져온다. 다시 돌아온 나눔보따리는 한데 모았다가 순환지원팀에서 다시 배달을 나가는 식이다.

설탕·비누·치약 등 생필품 17종이 담긴 아름다운가게의 ‘나눔보따리’.

"저희가 나눔보따리에서 강조하는 부분은 배달천사들이 독거노인들을 직접 찾아뵙고 하면서 말동무도 되어드리는 거예요. 보통 배달천사 차 한 대당 세 가구씩 방문하는데, 사전에 방문할 어르신댁 주소와 연락처를 드리거든요. 그럼 가기 전에 미리 통화하고, 찾아가셔선 집에서 오래 이야기도 나누고요. 한번은 한 배달천사가 어떤 분을 방문했는데, 며칠 뒤 큰 수술이 있으셨대요. 기억하고 있다가 다시 전화 드리고, 수술 잘 받으셨는지 안부도 묻고 챙겨드리고 했죠."(이현승 국장)

올해로 12년, 이제는 '배달천사' 팬들도 생겼다. 기업 임직원으로 참여했다가 가족과 다시 오기도 하고, 수년째 참여하는 봉사자들은 간사들보다도 베테랑이다.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자동차 동호회도 여럿이다. 올해는 라이딩을 좋아한다는 한 신혼부부가 사이클로 배달을 가고 싶다고 간절히 요청해, 쌀과 보따리 하나만 배달해주기로 했다.

오전팀 나눔보따리 포장 작업이 끝날 즈음, 매년 하는 나눔보따리 뒷단에서 손이 많이 가는 포장 작업이 귀찮진 않으냐며 질문을 던졌다.

"왜 우리도 누구 주려고 선물 줄 땐, 막상 주고 나서보다도 막 뭐 살지 고민하고 준비해서 포장지로 싸고 할 때 신나잖아요. 비슷한 마음인 것 같아요. 배달보다도 포장 봉사가 훨씬 만족도가 높다니까요. 또 일반 봉사자분들은 되살림터에 있는 컨베이어벨트 같은 것들도 신기해하시고요. 상자마다 꾹꾹 눌러 담은 이 마음이 잘 전달됐으면 좋겠습니다(웃음)." (황현이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