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너브러더스는 해리포터에 나오는 캐릭터나 영화 이미지를 사용하는 모든 초콜릿을'공정무역 인증 초콜릿'으로 바꿔라."

①아름다운커피의 이퀄 초콜릿을 생산하는 페루 나랑히요 생산조합 카카오 농가. ②아시아공정무역네트워크 ‘마루’ 초콜릿은 베트남 카카오로 만든다. 현지에서 카카오빈을 운반하는 모습. ③발효시킨 카카오빈의 모습.

지난 2010년 핼러윈, 해리포터 팬들이 영화 제작사인 워너브러더스를 대상으로 공정무역 초콜릿 사용 촉구 캠페인을 시작했다. 당시 워너브러더스는 해리포터 브랜드를 갖고 수십 종의 초콜릿을 판매하고 있었다. 팬들과 회사 간에 4년에 걸친 끈질긴 '힘겨루기'가 이어졌다. 해리포터 팬들을 조직해 사회 변화를 추구하는 조직인 '해리포터 얼라이언스(Harry Potter Alliance)'가 이 캠페인을 주도했고, 전 세계 팬 40만명이 뜻을 모았다. 원작자 조앤 롤링도 힘을 보탰다. 결국 지난해 12월, 워너브러더스가 두 손을 들었다. '2015년 내에 해리포터 관련한 모든 초콜릿을 공정무역 제품으로 바꾸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네슬레, 허쉬, 이번 워너브러더스에 이르기까지, 초콜릿 산업을 두고 아동 노동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아동 노동을 쓰지 않고 생산하는 카카오로, 생산자와 소비자가 공정한 가격으로 거래할 순 없을까.' 공정무역 초콜릿이 출발하게 된 지점이다. 전 세계 초콜릿 거래 시장에서 공정무역 초콜릿이 차지하는 규모는 0.9%(FLO, 2010년 기준). 전체 규모에선 미미하지만, 소비자 증가 속도는 빠르다. 2008년 3200만파운드(약 563억원)였던 영국 내 공정무역 초콜릿 매출은 2010년 3억4230만파운드(약 5636억원)로 10배 이상 증가했다. 영국에선 120개 이상 기업이 500품목이 넘는 공정무역 초콜릿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소비자들의 깐깐한 요구가 많아지다 보니, 유럽 시장에선 대규모 기업들도 공정무역 라인을 늘리는 분위기다. 허쉬, 마스(Mars), 페레로 등의 대표적인 초콜릿 제조 다국적 기업들은 "2020년까지 제품의 100%를 공정무역 카카오로 전환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한국의 초콜릿 시장은 어떨까. 오는 14일,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공정무역 초콜릿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카카오 열매, 공정무역 초콜릿이 되기까지

"처음에는 커피와 비슷하게 들여오면 되겠거니 했는데, 훨씬 복잡해서 고생 좀 했어요. 커피는 현지에서 생산한 생두(生豆)를 가져와서 잘 볶으면 되거든요. 그런데 카카오는 공정도 복잡하고, 높은 수준의 기술력이 필요하더라고요. 함께 할 현지 조합을 찾기도 쉽지 않았죠."

한수정 아름다운커피 생산자파트너십팀장의 말이다. 아름다운커피는 2010년 공정무역 초콜릿 '이퀄'을 시장에 출시했다. 페루의 나랑히요 조합과 관계를 맺었다. 반제품의 초콜릿을 굳혀 가져와 한국에서 재가공한다. "페루 지역은 마약류 코카인을 함유한 '코카'나무 생산 1위 지역이에요. 조합 분들은 수익이 훨씬 큰 코카 사업을 하다, 불법이기도 하거니와 제대로 삶을 살고 싶다는 마음에 카카오 재배로 넘어오신 분들이세요. 대단한 결심을 하신 거죠."

현재 한국공정무역단체협의회 소속 7곳 중 공정무역 초콜릿을 취급하는 곳은 총 6곳. 반제품을 들여오는 아름다운커피에서부터, 현지에서 제조한 완제품을 수입하는 아이쿱생협이나 아시아공정무역네트워크, 외국 공정무역 브랜드 제품을 수입해오는 경우까지, 수입 방식도, 생산자와의 관계도 제각기 다양하다. 그러나 그 모든 형태가 몇가지 원칙에선 궤를 같이한다. 생산자와 소비자 간 '깊은 신뢰'로 쌓아가는 관계라는 것.

아이쿱생협은 2007년부터 콜롬비아에서 가장 오래된 초콜릿 제조 기업인 내셔널드초콜릿(Companio Nacional De Chocolates)과 파트너십을 맺고 현지 카카오로 완제품까지 만든다. 공정무역 생산라인이 없던 내셔널드초콜릿이 일부 라인을 인증받도록 했다. 김태연 아이쿱생협 개발가공부 무역팀장은 "콜롬비아 공정무역 카카오 생산지 3곳과 관계를 맺고 있고, 앞으로 2곳을 더 개발할 예정"이라며 "카카오 열매를 추출한 이후 현지에서 제조까지 이어져 부가가치가 창출되도록 했다"고 했다.

'적정 가격'도 빼놓을 수 없는 원칙이다. 2009년 1t당 3100달러가량에서 왔다갔다하던 카카오 가격은 2011년 갑자기 2000달러까지 급락했다. 일반 초콜릿의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카카오 농민이 떠안아야 하지만 공정무역은 다르다. 안정적인 가격에 거래하기 때문. 이하연 아시아공정무역네트워크 사무국장은 "초콜릿 '마루'의 생산지인 베트남 메콩델타 지역에서는 스위스 국제 개발 단체가 들어가 카카오 재배와 가공 기술을 가르쳐 안정적으로 좋은 질의 카카오를 생산하도록 한다"며 "일반 구매보다 훨씬 더 높은 가격으로 장기적인 거래를 지속한다"고 했다.

◇오해는 낮추고 제품군은 넓히려면

흔히 공정무역 초콜릿은 맛이 없다는 편견이 많다. 한수정 아름다운커피 팀장은 "우리가 초콜릿인 줄 알고 먹는 대부분이 카카오 함량이 30%도 채 안 돼 '초콜릿'이 아닌 '준초콜릿'이나 '초콜릿 첨가제'로 표기되어 있고, 설탕과 유화제, 합성첨가물, 색소 등을 넣은 '무늬만 초콜릿'"이라며 "원재료 자체의 맛과 건강을 우선 생각하는 분들이 공정무역 초콜릿을 찾는다"고 했다. 공정무역 초콜릿은 코코아 메스 버터, 천연 바닐라 향료 등 합성 첨가물이 없는 원재료로만 만드는 것이 원칙. 그러다 보니 카카오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이하연 아시아공정무역네트워크 사무국장은 "공장에서 생산하는 모든 초콜릿은 각기 다른 카카오에서 나는 맛을 균일하게 하기 위해, 암모니아·나트륨·탄산암모늄 등의 약품을 카카오에 분사해 최소 3차례 이상 알칼리 처리를 한다"며 "본래 카카오 자체는 신맛, 단맛, 쓴맛 등 맛의 종합체라 와인이나 커피처럼 풍미나 맛이 품종마다 다른데, 알칼리 처리를 하게 되면 맛도 죽고 항산화물질도 한 번에 60%씩 감소한다"고 했다. 초콜릿 시장이 훨씬 발달한 유럽에서는 이미 '싱글 오리진(single origin·특정한 지역에서 난 카카오)' 등 카카오 특유의 풍미를 지닌 초콜릿을 찾는 마니아층이 상당하다.

지난 2005년 2000억~3000억 규모이던 국내 초콜릿 시장은 10년 사이 8000억 규모로 성장했다. 공정무역 초콜릿의 성장 가능성은 크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물론 이를 위해 제품 특성이나 가격대, 형식의 다각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높다. 김태연 아이쿱생협 팀장은 "지난해 생협에서 통 안에 동그란 초코볼이 들어가 있는 제품을 신규 판매했는데 그 매출이 3억6000만원 정도였고, 하반기에 새로 시작한 '공정무역 바나나'는 10억원 매출을 달성하기도 했다"며 "소비자들의 다양한 요구를 담은 공정무역 제품의 다각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아이쿱생협은 아이들을 위한 간식이나 과자 등에 들어가는 모든 초콜릿 원료를 공정무역 제품을 쓰는 등 카카오 소비를 더 늘릴 방안도 고민 중이다. 생산지를 이해하려는 노력도 성숙돼야 한다는 지적도 더해졌다. 한수정 아름다운커피 팀장은 "결국 공정무역의 핵심은 너와 내가 동등한 관계에서 도와가며 잘 살아보자는 삶의 방식"이라며 "공정무역 소비자들도 품질이나 가격만 따지기보단 제품을 통해 함께 관계를 맺는다는 생각으로 현지를 이해하려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