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타임스(FT)는 작년 1~11월 러시아 중앙은행이 금 152t을 매입했다고 29일 보도했다. 구소련 붕괴 이후 최대 매입량이었다. 같은 기간 세계 금 매입량(461t)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최근에 러시아는 왜 이렇게까지 금 매입에 열을 올리고 있을까.

세계 금위원회는 최근 보고서에서 러시아가 금을 대량 매입하는 이유는 외환보유액의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려는 의도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달러·유로화·엔화·금 등으로 구성된 외환보유액 가운데 금융 시장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 금의 비중을 높여 안정성을 꾀하려 한다는 것이다. 작년부터 시작된 저유가 등으로 루블화 가치가 폭락했고, 이 때문에 러시아는 환율 방어를 위해 외환보유액 중 달러를 대량으로 소진했다. 또 달러화 강세로 엔화와 유로화 가치까지 하락하자, 외환보유액이 결과적으로 더 줄어드는 타격을 입었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정성이 보장되는 자산인 금으로 눈을 돌렸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금 매입은 서방 세계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이 반영된 행동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러시아 중앙은행엔 이제까지 미국·유럽 국채 비중이 높았다. 하지만 현재 미국·유럽 등으로부터 경제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가 이 국가들의 국채를 매입하는 것은 적(敵)의 배를 불려주는 꼴이 되기 때문에 대신 금을 사들인다는 것이다. FT는 광물 산업 조사업체 GFMS의 직원의 말을 인용해 "러시아는 미국·유럽을 도와주는 일은 일절 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또 다른 분석도 있다. 매년 200t 이상 금을 생산하는 러시아는 중국·호주·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넷째로 큰 금 생산국인데, 서방 제재 때문에 해외로 금을 내다 팔 수 없게 되자 자국이 생산한 금 상당량을 다시 사들일 수밖에 없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러시아의 '금 사재기'는 오래 지속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루블화를 방어하기 위해 외환보유액을 이미 많이 써 버린 탓에 금을 매입할 실탄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