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과(韓菓) 명장 김규흔(59)은 왼손 검지 한 마디가 없다. 3년 전 약과(藥菓) 반죽을 절단하는 과정에서 사고가 나서다. 그는 36년간 한과를 만들며 지금의 대량생산 공정, 개별 포장 등을 개발해 한과 대중화를 주도했지만 여전히 약과 반죽 공정은 직접 살핀다. 반죽 과정에서의 수분 함량이 맛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2005년 국가 지정 한과 명인(약과·유과 부문)에 선정됐고, 2013년 한과 부문 유일 '대한민국 명장'이 됐다.

지난 28일 경기도 포천 신궁전통한과 공장에서 만난 그는 설 연휴를 앞두고 생산 과정을 총괄하느라 분주했다. "예전보단 덜 힘들어요. 10여년 전만 해도 연간 매출 중 설·추석 비중이 80%를 넘었는데, 요즘엔 60%대예요. 한과가 평소에 즐기는 음식이 돼가고 있다는 방증이죠."

김규흔 한과 부문 명장이 지난 28일 경기 포천 신궁전통한과에서 자신이 제조한 한과를 들어 보이고 있다. 그는 한과 세계화를 목표로 두고 유네스코 등재에도 도전하고 있다고 했다.

군대 간 처남을 대신해 약과 공장을 맡은 것이 1979년이다. 맛있게 먹는 법만 알았지 기술은 전무했다. "하나하나 손으로 찍어냈기 때문에 비쌌어요. 서양 과자에 입맛이 길들어 점점 외면받고 있었죠. 발효식품인 한과는 건강에도 좋아요. 그 맛의 깊이는 양과자나 일본 화과자에 비할 바가 아니죠. 한과를 대중화시키자고 결심했죠." 김규흔은 당시 약과 공장이 밀집해 있던 서울 중부시장에서 기술자들에게 술을 사가며 비법을 알아내기도 했다. 이를 토대로 다양한 약과와 유과(油菓)를 내놓았다. 1984년 한과상이 밀집한 서울 망원동에 홍수가 났다. 물량을 확보 못한 도매상들은 김규흔의 한과에 눈을 돌렸다.

지금까지 그가 내놓은 새로운 한과만 170여종에 이른다. 초콜릿 유과, 복분자 약과 등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한과를 내놓았다. 먹을 때 부스러기가 떨어진다는 유과의 단점을 보완해 한입에 먹을 수 있는 소형 유과를 내놓은 것도 그의 아이디어다. 그런데 그는 돈과 인연이 없다고 한다. "사업가로선 성공을 거뒀죠. 하지만 진짜 하고 싶은 일은 모두가 한과를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었어요." 2008년 그는 30억원을 들여 포천에 한과박물관을 설립했다. 이곳엔 한과와 관련된 각종 유물을 비롯해 식기와 모형 등이 전시돼 있다. 직접 한과를 만들어 볼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과 교육과정이 개설돼 있다. "어릴 때 한과를 맛봐야 우리 전통 과자의 맛을 압니다." 그의 박물관엔 연간 10만여명이 찾는다.

명인·명장 인증을 받고, 박물관도 설립했더니 매출은 오히려 줄었다. 후학을 가르치기 위해 매년 150시간 넘게 강의를 했다. 지금까지 제자 300여명을 배출했고, 이 중 40여명은 한과 사업체를 차렸다. "제자들 독립하면 거래처를 떼줬어요. 제가 다 쥐고 있으면 어떻게 한과를 대중화하겠어요? 동네마다 한과 공장이 있어야 쉽게 한과를 맛보죠."

그의 사무실 옆엔 작은 연구소가 있다. 이곳엔 중국 월병(月餠), 일본 화과자, 프랑스 마카롱 등 세계 대표 과자들이 있다. 그는 농업 발전을 위해서도 한과와 같은 콘텐츠에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008년과 2010년엔 프랑스 파리에서 한과 전시회를 가지기도 했다. 김규흔의 목표는 한과 문화를 유네스코(UNESCO)에 등재하는 것이다. 한과의 역사와 제조 방법 등을 다룬 책도 2월 출간할 예정이다. "정부 부처에서 한과 유네스코 등재에 관심을 보이지 않네요. 지금은 혼자 도전하고 있어요. 예전 박물관 지을 때도 처음엔 그랬죠. 한과를 대중화·세계화하는 것이 제 사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