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토 겐지씨가 IS에 인질로 잡히기 직전 촬영한 동영상을 발췌한 사진. 고토씨는 앞으로의 일을 예감이나 한 듯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말했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단체 IS(이슬람국가)가 일본인 인질 2명 중 유카와 하루나(湯川遙菜·42)씨를 살해한 뒤, 남은 인질 한 명 고토 겐지(後藤健二·47)씨 생환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분쟁 지역 전문 프리 저널리스트인 데다 먼저 인질로 잡힌 유카와씨를 구출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시리아로 갔다가 인질이 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에 대한 동정 여론이 확산되는 추세다.

고토씨는 작년 10월 말 터키를 경유해 시리아로 입국했는데, 작년 8월 IS에 납치된 유카와씨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고토씨는 그해 4월 취재 차 시리아를 방문했을 때 유카와씨를 알게 됐다. 주변에선 고토씨를 말렸지만, 그는 "유카와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경험 있는 사람이 나서서 도와줘야 한다"며 시리아로 향했다고 로이터통신은 보도했다.

민간 군사업체를 운영했던 유카와씨는 파산, 암 투병, 배우자 사망 등 수차례 불운을 겪었고, 자살 시도까지 했다. 시리아로 간 이유도 재기를 꿈꾸며 새 사업을 구상하기 위해서였다. 그곳에서 중동 정보에 밝은 고토씨의 도움을 받았고, 작년 6월 두 사람은 함께 이라크를 방문하기도 했다.

마이니치(每日)신문에 따르면, 고토씨는 유카와씨를 구하러 시리아에 입국하기 전, 터키에 사는 시리아인 지인에게 시리아 동행을 부탁했다. 하지만 지인이 "너무 위험하다"고 거절하자, 다른 시리아인을 섭외해서 함께 시리아에 입국했다. 작년 11월 1일 고토씨는 먼저 도움을 요청했던 시리아인에게 전화를 걸어 "가이드에게 배신당해 IS에게 붙잡혀 버렸다"고 전한 이후 연락이 끊겼다. 그는 자체 촬영한 마지막 동영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모두 내 책임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고토씨 사연이 알려지면서 그를 위한 구명(救命) 운동이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처음 시작한 사람은 고토씨의 친구 니시마에 다쿠(西前拓·52)씨다. 그는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영어로 '나는 겐지다(I am Kenji)'라고 쓴 피켓을 들고 찍은 사진을 올렸다. 이슬람 추종 테러리스트가 프랑스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를 공격한 후, 세계에 퍼진 '나는 샤를리다' 구호에서 영향받은 것으로 보인다. 미국 인터넷 청원 사이트 '체인지(change.org)'에도 고토씨를 구해 달라는 청원이 26일까지 2만여건 올라왔다.

전 세계 어린이들이 IS 인질로 붙잡힌 고토 겐지씨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며 ‘나는 겐지다’라고 쓴 영문 피켓을 들고 찍은 사진. 21일 고토씨의 친구 니시마에씨가 페이스북에 ‘나는 겐지다’라고 쓴 피켓을 들고 찍은 자신의 사진을 올린 이후 온라인을 통해 ‘나는 겐지’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고토씨를 향한 응원은 유카와씨 때와는 사뭇 다르다. 극우 성향의 유카와씨는 자신의 블로그에 일본 극우 정치인과 찍은 사진을 게재하고, "종군 위안부가 성노예라는 것은 사실무근" "반일 운동에도 정도가 있다. 한국·중국과는 국교를 단절해도 좋다"는 글을 올려 일본 내에서도 거부 반응을 일으켰다.

고토씨는 1996년부터 북아프리카·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한 분쟁 지역에서 전쟁고아 등 피해자 인권 문제를 전문 취재했다. NHK와 일하면서 '성실하고 믿을 만한 저널리스트'라는 평판을 쌓았다. 2003년 고토씨와 함께 NHK방송에 출연해 친분을 쌓은 유명 저널리스트 이케가미 아키라(池上彰)씨는 아사히(朝日)신문에 "전폭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베테랑 저널리스트이며, 약자들 편에 선 인물"이라고 그를 평가했다.

일본 정부는 고토씨 구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IS는 원래 고토씨 석방 조건으로 요르단에 사형수로 수감된 여성 테러리스트 사지다 알 리샤위의 석방을 요구했지만, 요르단 정부가 이를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자 일본 정부는 작년 12월 공습 작전 중 IS에 붙잡힌 요르단 공군 조종사와 고토씨까지 총 두 명을 IS가 지목한 테러리스트와 맞교환하는 방안을 내놓고, 요르단 정부를 설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