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섭 보건복지전문기자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은 최근 "주민세와 자동차세 인상을 관철하는 데 내가 십자가를 지겠다"고 했다. 2000~1만원씩 내던 주민세를 1만원 이상으로 올리고 영업용 차량의 자동차세는 100% 인상하겠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연말정산 증세 소동에 뿔난 국민의 가슴에 기름을 부은 이 말은 정치감각 없는 한심한 소리로 들린다. 하지만 정 장관은 왜 이런 턱없는 소리를 한 것일까.

정부 재정 곳간의 텅 빈 현실을 보면 답이 나온다. 정부는 요즘 예산 집행을 외상으로 돌려막고 있다. 공무원연금은 정부가 보험료의 반을 내서 매월 연금 지급에 쓴다. 하지만 현 정부가 출범한 2013년 정부는 연금 정부 부담 보험료를 외상으로 2033억원 달아놓았다. IMF 경제 위기 때도 없던 일이었다. 2년 만인 올해에야 예산에 끼워 갚겠다고 나섰다.

전국 시·군·구에 지급하는 행정자치부의 지방재정교부금도 마찬가지다. 2013년부터 2년에 걸쳐 무려 1조원을 외상 장부에 달아놓았다가 올해 예산에 외상값을 편성했다. 그나마 올해도 재정 형편이 어려우면 다시 외상 장부에 기재할 것은 뻔한 이치다. 빚으로 예산을 돌려막는 게 현 정부의 실상이다. 무상 복지로 쓸 돈은 갑자기 늘었는데 경기 불황으로 세금이 3년째 예상보다 덜 걷힌 탓이다.

무상 복지 광풍(狂風)은 지난 2011년 총선을 앞두고 쏟아져 나왔다. 통합진보당은 민주노동당의 정책을 계승해 그해 1월에 총선 공약으로 '0~5세 보육료 지원·아동수당' '초·중·고 무상교육·무상급식' '대학 반값 등록금'을 내걸었다. 무상 시리즈의 출발이었다. 민주당은 정책연합을 통해 이를 흡수했고, 새누리당도 경쟁에 뒤질세라 판박이 공약을 내세워 표몰이에 나섰다.

한국처럼 복지가 빈약한 국가에서 선거를 통해 복지 확대가 이뤄지는 것은 필연적이다. 문제는 복지 확충이 아니라 그 속도에 있다. 갑자기 복지 예산이 껑충 뛰면서 부작용이 속출했다. 무상 보육 광풍으로 민간 어린이집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부실 어린이집·교사를 양산했다. 기초연금은 현 정부가 집권 후 노인의 70%에게만 주는 것으로 수정했지만 과연 이나마 지킬 수 있을까. 현재 노인 수가 600만명인데 2040년이 되면 1600만명으로 늘어난다. 과연 이들의 노후를 보장할 돈을 차기, 차차기 정권은 마련할 재간이 있을까.

무상 보육은 0~5세에게 월 22만~77만7000원 준다. 기초연금은 노부부에게 월 32만원 준다. 과연 젊은 부부들은 월 77만원씩, 노부모를 둔 자녀들은 32만원씩 세금을 낼 자신이 있을까. 우리는 '아이는 나라가 책임지고 키운다' '부모 봉양은 국가가 책임진다'는 선거 공약에 박수쳤을 뿐 내가 그 돈을 내야 한다는 사실을 잊었다.

섣부른 복지 장사로 표를 얻던 시대는 막을 내려야 한다. 정치권은 표를 찾아서 '무상'을 외치기보다 재정부터 따져야 한다. 국민도 "부자에게 세금을 거둬서 하겠지"라고 해선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국회 예산정책처가 경고한 대로 2033년이면 복지 예산 때문에 정부 재정이 파탄 난다. 내년 총선, 2018년 대통령선거에서 다시 무상 시리즈로 국민을 현혹하면 거덜난 정부의 적자 계산서를 우리에게 안겨줄 게 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