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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우리가 천국에 산다면 행복할 수 있을까?|토마스 휠란 에릭센 지음|손화수 옮김|책읽는수요일|384쪽|1만5000원

서울살이 막살하고 제주 내려간 지 3년이 된 후배에게 "행복하냐?" 물었다.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헷갈릴 만큼 시간이 느리게 흘러 좋다"며 웃었다. 수입도 줄고, 좋아하는 연극 못 보고, 육체노동은 더 많이 해야 하지만 아침에 눈뜰 때 머리가 아프지 않아 좋다고도 했다. 서울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행복한가?' 물었다. 돈이나 질병으로 고통받지 않는데도 비행기 유리창에 비친 낯빛은 창백하고 우울했다. 구름 아래 고층빌딩 숲으로 돌아가 새벽부터 밤까지 롤러코스터처럼 이어질 일상을 떠올리자 숨이 꽉 막혀왔다.

◇지상천국 노르웨이가 불행하다?

'행복학'은 21세기 들어 가장 왕성한 발전을 보여온 학문이다. '과거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롭고 부유한 삶을 사는데도 사람들은 왜 여전히 불평을 하고 걱정을 쏟아낼까'라는 의문이 그 시작이었다. 무수한 개론서가 나왔고, 무수한 처세서가 쏟아졌다. 긍정심리학 열풍도 불었다. 80만명 인구에 국민소득 2000달러에 불과한 '부탄'이란 나라가 '행복지수 1위'라는 랭킹으로 유명해진 것도 행복학 덕분이다.

하필 이 책이 눈에 띈 것은, 인류학자인 저자가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 꼽히는 노르웨이 사람이어서였을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가장 안전하며 가장 평등한 나라에 사는 사람이 왜 '천국에서 산다면 행복할까'라는 질문을 던진 걸까. 답변도 놀랍다. '행복하지 않다'이다. "풍요롭기만 한 삶이 지루해 못 견디는 사람이 있고, 우울증과 자살 충동은 나날이 커지는가 하면, 물질적인 것에만 관심이 집중돼 허무감이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지상천국이라는 노르웨이가 그 정도면 우리 사는 이곳은 지옥이란 말인가?

저자의 연구 대상은 노르웨이 대다수 국민을 포함한 '국제 중산층'의 삶이다. 휴대폰과 인터넷을 소유하고, 저녁으로는 뭘 먹을까 궁리하고, 휴가가 다가오면 어디로 여행을 갈까 생각하는, 전 세계 상위 20%에 해당하는 사람들. '물질만능 사회에서 삶의 만족감을 얻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그는 고전과 심리·철학서, 경제학서를 뒤지고 허접한 행복개론서들까지 망라한다.

문화인류학자인 저자 에릭센은 인구 100만명의 작은 섬나라 모리셔스에서 현장 연구를 하면서 물질만능 사회일수록 왜 삶의 만족도가 낮아지는지 깨닫는다. 가난했던 나라가 세계적인 휴양지가 되면서 놀랄 만큼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지만 그들이 정작 잃어버린 건‘느린 시간’, 즉 행복이었기 때문이다.

행복으로 가는 묘책이 나오리라 기대하면 오산이다. 오히려 우리가 행복이라 느끼는 감정의 정체가 무엇인지 추적해 들어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풍요로운 사회에서 현대인들이 느끼는 행복감은 '인스턴트 만족감'이라는 게 요지다. 첨단기술의 발달로 원하는 걸 즉시 손에 넣을 수 있게 되면서 사람들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바쳤던 인내와 끈기, 여유를 잊었다. 지금 당장 미래를 경험할 수 있으니, 현재의 고통과 어려움을 이겨내지 않는다. 한계 효용의 법칙은 행복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명품 중독, 성형 중독, 쇼핑 중독 말이다. 성형 중독 사례로 한국 청년이 등장하는 대목은 씁쓸하다. 선택의 가능성이 클수록 행복이 증가하는 대신 혼돈과 우유부단, 무정체성만 난무한다는 것이 저자가 꼬집는 풍요 사회의 역설이다.

◇역경을 이겨낸 만큼 행복한 건 아닐까?

영화 '시티 오브 조이'는 어쩌면 행복의 진정한 의미를 보여주는지도 모른다. 가난과 폭력에 찌든 도시 콜카타에서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워낭을 목에 단 소처럼 인력거를 끄는 하사리와 수술대에서 한 소녀를 살려내지 못한 뒤 도망치듯 콜카타로 날아온 미국인 의사 맥스. 하사리와 맥스, 진료소장 조안은 빈민굴을 사람 사는 곳으로 만들기 위해 온갖 역경과 맞서 싸운다. 하사리와 맥스가 주고받는 말이 가슴을 울린다. "맥스, 사는 게 왜 이리 힘들까요?" "그래서 기쁨이 더 큰 것 아닐까요?"

◇'느린 시간' 되찾는 법

'가난하지만 수다 떨 친구가 많은 소말리아 여자와 부자이지만 매일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 노르웨이 남자 중 누가 더 행복한가?'라고 묻는 저자는 방대한 작업 끝에 몇 가지 행복에 이르는 길을 찾아낸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할 것 ▲자기 도취와 자기 희생, 평등과 경쟁, 안정과 자유, 금욕과 즐거움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할 것 ▲조금 어려운 듯한 일에 도전해 성취감을 얻을 것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어 존경받고 인정받을 것 ▲사소한 기쁨을 잊지 않고 즐기되 자신과 타인의 불평등에 대해 비판적 자세를 가질 것 ▲더 늦기 전에 자신에게 의미 있는 사람들에게 정성을 다할 것 ▲열정과 쾌락을 두려워하지 말되 필요 이상으로 참고 인내하지 말 것 등등. 진부하게 들리지만 '더 높이, 더 빨리, 더 강하게' 사느라 잃어버린 '느린 시간'을 되찾아 진짜 행복을 꾸려갈 수 있는 비법들이다.

경제성장 모델로 일관해온 선진 부국들에도 경고를 날린다. 부와 함께 빈곤도 창출하면서 환경까지 무차별 파괴한 성장 모델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데 실패했다는 것. 이제라도 생산 증대 대신 환경을 살리고 정신적 풍요를 높이는 방향으로 국가 정책을 과감히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 그가 내놓은 대안이다.